Thoughts2008.01.03 09:46
가끔 논문 작성이나 수식 편집을 하다 보면 (특히 웹 환경이나 MS 환경처럼 비-Unix 환경에서 작업하는 경우) LaTeX의 강력한 수식 편집 기능이나 조판 기능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참고하면 좋을 만한 프로그램들과 사이트들을 소개합니다.

Aurora http://elevatorlady.ca/?gclid=CJDpi6qnw48CFRdPagodNmByYA

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글은 http://blog.edple.com/645 여기에 아주 잘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Aurora는 상용 프로그램입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MS 프로그램에 수식을 집어넣은 사례랍니다.



ScienceSoft.at http://sciencesoft.at/index.jsp?link=latex&size=1024&js=1&lang=en

이 웹 사이트에 대한 소개글은 http://gogunhwa.tistory.com/27 에 아주 잘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은 수식 이미지를 만들 수 있군요.



Latex Live Server http://latex.liveserver.com/

이 사이트에 대한 소개글은 http://gogunhwa.tistory.com/27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식을 입력하면 다음과 같이 이미지를 만들어 준답니다.



태터툴즈 Latex Lenderer 플러그인 http://forest.nubimaru.com/849

이 플러그인은 위 사이트에서 계속 관리되고 업데이트 됩니다. 아래와 같은 수식도 작성이 가능하네요. 멋집니다.

LaTeX equation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Thoughts2007.12.28 10:56

저는 90년도에 첫 대학 입학 시험을 치렀고, 92년도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원하던 학과가 아니라 원하던 대학이라는 점에 주목합시다 ㅋㅋ) 잘 하면 91학번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해에 수학 시험이 정말 기록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92학번이 되고 말았죠. 저는 수학에는 별 소질이 없거든요.

90년도 겨울에 입학 시험 응시 원서를 내러 학교로 갔는데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나더군요. 저는 지금도 '입학 시험'을 생각하면 91년도 겨울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 90년도 12월의 그 최루탄 냄새가 생각납니다.

* * *

흔히 현행 입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학생들을 3중고로 내모는', 수능/논술/내신의 3중 평가 체제를 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능도 준비해야 하고, 논술도 준비해야 하고, 내신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죠. 저는 학력고사 세대이니 논술이나 내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1등급/2등급 등의 학생부 구별은 존재했습니다만, 형식적이었죠.) 하지만 수능/논술/내신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면 좀 피곤할거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수능'이나 다름 없는 '학력고사'만 치면 됐던 91년도의 시험 제도가 편하긴 편했습니다. 한가지만 준비하면 됐으니까요. (아. 체력장을 빼먹을 뻔 했군요.)

그런데 '학생 입장에서 편한'게 '대학 입장에서도 편한'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변별력이 없지 않느냐'고 아우성 치는 분들이 었었고, 그 덕분에 '변별력'을 높이는 동시에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하고 '평소 학교 생활 태도'까지 가늠할 수 있는 논술과 내신이 도입되었으니 말이죠. 도입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새로운' 시험 제도를 도입하자고 아우성친 것은 정작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아니었습니다. 대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돈줄을 쥔 사람들이게 마련이니까요.

92년도에 제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저는 정말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많은 분들이 국내 일류 대학이라고 인정해 주는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교과서에만 충실'하고 '학교 수업과 예습 복습만 철저히 한' 저 같은 학생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죠. 실제로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방에 있었고, 크게 유명한 고등학교는 아니었습니다만, 매년 서울대에 20명씩의 학생들은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서울에 진학한 학생들 중 대부분은, 저처럼 과외 한번 받아본 적 없이, 가끔 단과학원이나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하곤 했었죠.

물론, 서울에 진학한 다음에 소위 교육에 있어서의 '경제적 불평등'을 몸소 느낄수는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저도 과외 시장에 뛰어 들어야 했거든요. 별로 능력이 없어서 가르쳤던 학생들의 성적을 많이 올리지는 못했습니다만, 주변의 예를 살펴보면 '좋은 과외 선생을 만난' 학생들의 점수가 많이 오르긴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과외 시간에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결국 좋은 대학에 갔죠.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성실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것이었죠.  (그것도 학력고사 준비라는 특정 분야 한 군데에만 말이죠.) 물론 대단한 천재들은 별 문제 없이 좋은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95% 정도의 학생들을 나누는 기준은 '성실성'하나 뿐이었습니다. 머리가 좋아도, 특출한 재능이 있어도, 학력고사 준비에 성실하지 못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못갔습니다. 물론 극도로 머리가 좋으면 문제는 다릅니다만, 어중간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결과로 파생된 문제점도 딱 한가지였습니다. 기준이 '성실성'한가지 밖에 없으니,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성실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실성에 따라 점수를 받았죠. 문제는, 학생이 자신의 '성실성'을 쑤셔박을 곳이 학력고사 한가지 밖에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받은 점수(딱 한번 평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에 따라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된다는 점이었죠.

여기에 문제를 느낀 나머지, 2번 시험을 보아 그 중 좋은 점수를 고를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고, 그 때 부터 이런 저런 교육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졌습니다만, 어쨌던 '점수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현행 교육제도들의 모든 폐해는 전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입력이 아무리 다양화되어도, 그 결과로 나오는 아웃풋은 전부 하나라는 것이죠. 서울대부터 시작해서 1, 2, 3, .... 의 순서가 매겨져 있는, 그 순번 말입니다.

* * *

자. 위의 이야기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뭔가요? 92년도의 구닥다리 교육체계 아래에서도, 가난한 학생'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을 정하는 함수 f의 입력이 되는 인자가 '학력고사 점수' 한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그게 좀 쉬웠습니다.

f(학력고사점수 grade)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f(학력고사점수 grade1, 논술점수 grade2, 내신점수 grade3)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이 함수의 실행 결과로 나오는 값이 딱 하나(갈 수 있는 대학)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 팜플렛(hwp 파일입니다)을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가난이 교육으로 대물림되는 악순환

위에서 본 함수 f의 값이 무엇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냐, 아니면 이제 그만 가난해도 되느냐가 결정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분들도, 그런 악순환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함수 f의 기능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닌데, f의 인자 가짓수만 늘어난 현재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뭘까요? 네. 맞습니다. '앞으로 가난해지고 싶지 않으면 논술과 내신도 다 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려면 자식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논술과 내신에 쏟아 부어야 할 사교육비가 덤으로 생긴겁니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아, 불쌍한 이 땅의 중산층이여.. ㅎㅎ)

원래 떼부자인 사람들에게는 사실 교육 제도가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수틀리면 유학을 갔다 와도 되니까,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죠. 하지만 중산층(이라고 정말로 불릴 만한 재력이 있거나, 자신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식이 계속 교육을 잘 받아야 '그나마 먹고 살만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가 있거든요.

예전에 "하버드 대의 공부벌레들"이라는 TV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그 때 그 드라마의 모 교수가(킹스필드였나?) 그런 소리를 했더랬죠. "하버드 대 졸업장은 곧 권력이다." 비슷하지는 않습니다만, 서울대학교 졸업장 있으면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교육에 목을 매지 않을 수가 없죠.

그럼 진짜 문제는 뭐란 이야기죠? 시험 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대학에 따라 인생이 서열화 되는 것으로 느끼는' 세간의 인식 구조가 진정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 * *

쪽팔리는 고백입니다만, 저는 직장을 잡고도 먹고 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초중학생들에게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학원에서 한달에 오십만원을 받고 그 짓을 했었죠.) 눈알이 똘망똘망한 어린 아이들이 제 앞에 모여앉아, 저도 대학생일 때 이해하기 참 힘들었던 알고리즘을 배워 Visual C++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실 속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먹고 살겠다고 이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해도 되나... 결국 그만뒀습니다. 아직도 가끔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악몽을 꿀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했던 짓 가운데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입니다.

그 아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내 몬 것은, '각종 경시대회 수상 기록을 가져오면 대학교 입시 때 가산점을 주도록 한' 입시 제도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제도가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함수 f의 출력은 전혀 바꾸지 않은체 이런 식으로 '의도는 좋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대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학생들이 컴퓨터 앞으로 내몰리고, 뜻도 모르는 알고리즘을 기계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 '가산점'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백만달러짜리 점수'가 될 수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대학에 가고 안가고를 결정하는 일을, '백만달러짜리 결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것에 따라 평생 얻게 되는 수입이 백만달러가량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이 주는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빈곤층에서는, 대부분 그 '백만달러'를 포기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을 좀 유심히 봤습니다.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과거에도 사교육을 잡겠다고 고교평준화제도(‘73년), 대학 입시자율 박탈(’80년), 대입 3불정책(‘98년) 등 계속 입시제도를 바꾸어 왔지만,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고교 평준화제도나 대학입시자율박탈, 대입 3불정책 폐지 등이 아닙니다. (위에서는 마치 그런 것처럼 언급하고는 있습니다만.) 문제는 f값의 출력을 다변화 할 복안도 없으면서 계속 새로운 시험제도를 도입해(입력만 다변화) 학생들만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 물론 사교육비도 증가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고교 평준화제도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평준화 제도를 씹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예를 많이 듭니다만, 미국에서도 좋은 고등학교를 가면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아지긴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려진 사립 고등학교에 비싼 돈을 내고 학생들을 보내기도 하죠. 하지만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럭저럭 괜찮은 것은, 미국에는 특성화된 다양한 대학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공돌이까지 꼭 하버드를 목표로 해야 하는건 아니라는 소리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저같은 공돌에게도 '니가 공부를 잘한다면 서울대에 가야지!'라고 하더군요. 물론 요즘은 선택권이 좀 다양화되긴 했습니다만.) 한편, 우리나라는 대학 서열에 대한 세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고교 평준화를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요? 평준화를 안하면 '좋은 고등학교'='좋은 대학교'='좋은 인생'의 공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를 없애야 합니다. '좋은 고등학교'가 생기는 순간, '좋은 인생'을 위해 아이들을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입시 학원으로 떠밀게 됩니다. (좋은 대학교라는 기준이 전공별로 다양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같이 가난하고 빽없고 세상 물정에 그다지 밝지 못한 부모님을 둔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가기가 좀 심각하게 힘들어지죠.

마찬가지 논리로, 대학교 입시 자율도 '이런 세상 아래'에서는 없는 게 낫습니다. 서울대가 입시자율을 하고, '자기 기준'대로 학생들을 뽑는다고 선포했다고 해 봅시다. 그 순간, 학원에는 '서울대학교 입시 준비반'이 따로 생길겁니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입시 제도가 학교마다 다 다르니까요. -_-;) 그 결과로 '무슨 무슨 학원의 서울대학교 진학반이 좋다더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제 그 학원의 서울대학교 반을 보내기 위한 '무슨 무슨 학원 입시 준비 특별반'이 만들어지게 될 지도 모르죠. (일본은 그랬었습니다. 동경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ㅎㅎ)

자. 그러면 이명박 당선자는 '사교육이 철저히 시스템화될 수 밖에 없는'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사교육비를 어떻게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는 걸까요?

'누구든 적성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고교를 300개 만들겠다'
'누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이 찾아가 뽑도록 하겠다'
'학교가 기초학력과 바른 인성만큼은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도록 하겠다'
'온 동네, 온 나라가 함께 나서서 좋은 학교를 만들도록 하겠다'

고교 300개를 만들겠다는 것 안에는, '교육 때문에 낙후된 지역에 우선적으로' 150개의 기숙형 공립고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뒤가 거꾸로 된 감이 있습니다만, 좋은 공약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자율형 사립고교'에 이르면, 좀 이상합니다. 대체 '무슨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은데, 학생을 뽑는 것도 '그냥 자율에 맡기겠다'고 합니다. 예로 '종교를 건학 이념으로 삼는 학교'같은걸 들긴 합니다. (모 토론 프로에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께서 나오셔서, '기도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ㅎㅎㅎㅎ 적어도 '정책'임을 홍보하려면, 이것보다는 더 잘 알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현행 자립형 사립고'도 '자율형 사립고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군요. 재정규제도 낮춘다고 합니다. (뭐,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는 뜻이겠죠. 최고 상한은 규제하겠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정부에서 가져가는 보조금의 액수를 낮춰도 되고, 결과적으로 정부 재정 부담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절감된 재정을 다른 소외 학생 지원에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율형 사립고'를 운영하면, 그 결과가 사뭇 뻔하지 않나요?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기도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로 학생을 넣을 정신나간 학부모는 드물 것 같고, 주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일만한 학교'나, '잘 가르치는 선생들이 있는 학교'로 학생들을 들이밀려고 하겠죠. 결국 그걸 빌미로 학교는 돈을 벌 테고, 돈이 좀 있는 분들이 그런 학교로 자제 분들을 보낼 테니, 결국 그런 학교에는 있는 분들의 학생들만 넘쳐나겠죠. (이런걸 '양극화'라고 하나보더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반론을 제기하실 분들도 있는데, 소위 '향학열'이 높은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 가서 주변 민심 한번 살펴보세요. 주변에 임대 아파트가 있으면 집값 떨어져서 그 주변에는 이사 안한다는 사람은 차라리 양반입니다. '어떤 아파트 아이들은 공부를 영 안해'라는 소문이 돌면, '저 아파트에 사는 애들하고는 놀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쓰레기같은 애엄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서는, 주변에 '좋은 학원이 있는 지역의 아파트'만 집값이 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죠.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공약 가운데에는 좋은 내용도 많습니다만, (영어에 대한 공교육 기회 확대 같은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저같은 사람 등골 휘게 하는 영어 사교육비는 좀 줄지도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공약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만 정리해 보죠.

  • 자율형 사립고
  • 교육국제화 특구
  • 대학 입시 제도 자율화
  • 교육격차 현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사업의 결과를 국민과 주민에게 보고(점검까지는 좋은데, 대체 왜 보고한다는 것인지 알수가 -_-;)
  • 학교별 학력자료 공개 (대체 학교들을 서열화 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이런 자료 공개되면 '꼴통 학교에는 내자식을 보낼 수 없다'는 엄마들 나오죠)
  • 기초학력진단평가를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그래도 저는 국민학교 다닐때에는 입시 걱정없이 맘편하게 놀았습니다. 이런거 시험 보면 그때부터 엄마들이 애들을 닥달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국민학교때부터 공부에 마음을 잃어... 아흑 ㅜㅜ)
* * *

이런 글을 써 놓으면 이런 말을 할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왜 이명박 당선자의 좋은 공약은 이야기 안하느냐?" 좋은 공약은 좋으니까 이야기 안하는 겁니다. 그냥 마음먹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공약입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긴 뭐하니까 좋다고 생각되는 공약들도 예를 들죠.

  • 영어 잘하는 대학생 활용
  • 교사 국제 교류
  • 원어민 보조교사 확보
  • 영어 공교육 완성 (그런데 왜 하필 영어?)

저는 이명박 당선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대선 후보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교육 제도는 반대입니다.

저는 있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인생이 핀다'는 현재의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와이프가 '우리 애도 이런 저런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면 호통부터 쳤겠지만,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결혼 직후에는 '우리 자식은 맘껏 놀게 하자'고 했었는데, 지금은 감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제 주머니 사정과 아이의 능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자기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교육제도입니다. 대학간 상하 구별을 없애는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낫죠.

그런 면에서 보면 92년 그시절이 좋았습니다. 너무 순진하죠?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왕의난자

    너무 좋은글이네요...저도 92학번인데...ㅋㅋ 동감이 갑니다.

    2007.12.28 14: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 잘쓰시네요ㅎ 부러워요~
    제 글이 너무 부끄럽네요;;
    교육정책이 정말 있는 사람에게로만 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2007.12.28 18: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트랙백이 걸려져서 와봤습니다. 닉네임부터 호감이 가는데요? -_-;;ㅎ
    92학번이라;;; 저는 02학번입니다. 요번 겨울이면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네요..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긴 하지만 경제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교육에도 고스란히 전달되는게 너무 슬퍼요. 우웅~_~

    2007.12.29 22: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조건 보다도 좋은 학벌을 우대하는 사회 전체의 풍토가 고쳐지지 않으면,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결과는 똑 같을 것 같습니다.

    2008.01.03 00: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NC_Fly님 블로그에서 트랙백보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글 읽게되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사회풍토가 바뀌어야하는 모양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1.09 20: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07.12.16 23:15
컴퓨터를 쓰게 된 이후로 필기구는 잘 쓰질 않습니다. 어쩌다 제 소유의 볼펜을 가지게 되는 일이 생겨도,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웬지 '만년필이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파카 벡터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어디서 사는게 좋을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공짜 만년필이 생겨버렸습니다.

이 만년필로 제일 처음 써 본 것이 제 이메일 주소라니! 어쩐지 좀 어이없긴 합니다. 보통 필기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기 위해서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원하는 필기구를 갖고도, 키보드 앞에 앉아 이렇게 타이핑을 하고 있습니다. '원하던 필기구를 얻은 감상'을 써내려가기 위해서요. 예전같았으면 원고지에 만년필로 써내려가는 것이 '감상'이라는 단어에는 훨씬 더 걸맞았을테지요.

공짜로 생긴 만년필

네. '만년필을 가지고 싶다'는 저의 바램이 일상적인 필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저와 같은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 이런 필기구는 '가끔 꺼내어 바라보면서 흐뭇해 하기 위한 무엇'이지 '회의 시간에 UML 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위한 도구'는 아니거든요. 그런 다이어그램에는 삼색 볼펜이 훨씬 더 어울립니다. 그러니 사실 만년필은 저에게는 사치품이에요. (아. 제가 가진 물건 중에 이보다 더한 사치품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Pentax DSLR K100D가 바로 그것이죠. 사진 찍으러 나갈 시간도 없는 주제에 사진기라니. 정말 사치의 극치군요 -_-)

이처럼, 실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프로그래머들도 가끔 사치를 하긴 합니다(아. 그렇다고 제가 '실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프로그래머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대체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죠). 고가의 키보드를 큰맘먹고 구입하고는 정작 코딩은 노트북에서 하기도 하고, 이렇게 평소에는 전혀 쓸 일이 없는 물건을 구입하기도 해요. 그런 물건들은 '내가 남들과는 좀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쓰다듬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애완동물'이기도 해요. 결국, 물건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셈이죠. 그럼으로써 팍팍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푼달까요.

물론 이번에 제가 얻은 만년필은 '중국산 짝퉁 몽블랑'이라서 그렇게 확 느낌이 살지는 않는군요. -_- 그럼 왜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적었냐구요? 에... 그래도 잉크 값은 보통 필기구보다 비싸거든요. *쿨럭*

[참고]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안녕하세요..만년필을 좋아하는 블로거 입니다. 처음 만년필에 입문했을때 느꼈던 느낌이 기억이 나서 글을 남겨봅니다. 만년필이 사시 고가이긴 하지만 오랬동안 내 곁에 남아 있을수 있는 무엇이라는 점에서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초면이지만 좋은 만년필 친구가 될수 있길..좋은 하루 되세요..^^감사합니다.. 즐거운 만년필 이야기 펜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henes114)

    2008.10.26 12: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07.10.26 13:38
LP냐 CD냐. 이 주제는 꽤나 해묵은 주제죠. :-) 그리고 사실 이미 시장은 CD쪽으로 거의 다 넘어가 있습니다. CD때문에 LP도 죽었고, 테이프도 죽었습니다. CD는 테이프정도의 휴대성에, LP 이상의 음질을 제공하는 괜찮은 기록 매체이죠. 다만 문제는 가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LP냐 CD냐 라는 주제를 놓고 설왕설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LP가 선사하는 추억의 사운드를 선택할 것이냐 (감정적인 선택이죠) 아니면 CD가 주는 명료하고 정확한 음질을 선택할 것이냐 (이성적 선택입니다)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왔고, 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수 음악 애호가들은 집에 CD 시스템과 LP 시스템을 같이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사실 음악 애호가라면 집에 LP 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인데, CD 듣자고 그 판들을 전부 갈아엎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테이프냐 CD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되었던 바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CD랑 테이프는 '적어도' 음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호불호의 문제를 이야기할 만큼 대등하지 않거든요. 음질은 확실히 CD쪽이 더 낫습니다. 그 음질은 오래 들어도 바래지 않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CD 시스템으로 이행하면서 테이프 시스템들을 내다 버릴때,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테이프는 휴대를 위한 매체였습니다. 워크맨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은 음질 문제에 있어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테이프의 부피때문에 주머니에 이 테이프 저 테이프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문제는 물론 있었습니다만, 그런 문제는 CD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는 MP3의 그것과 같았죠. 공 테이프를 마련해서, 듣고싶은 음악을 쭈욱 녹음한 다음에 그걸 들고다니는 겁니다.

그러므로 CD로 테이프를 대체하는 것은 휴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올바른 선택이 아닌 셈이에요. CD가 테이프보다 더 나은 부분이 없거든요. MP3 시스템이 등장하고 나서야 확실히 더 나아지죠.

CD가 테이프 시장까지 말아먹은 덕에, 많은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테이프가 배제되기에 이릅니다. (제 차도 그렇습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불편한게 좀 있더군요. 제 차에 설치된 오디오 시스템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보니, CD를 집어 넣으면 '예전에 재생되던 마지막 위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좋은 시스템은 기억할 수도 있나요? 잘 모르겠군요. 좋은 시스템을 써 본 적이 없어서 ㅋㅋ) 요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이게 생각 외로 불편하더군요. 오디오북을 듣는 와중에 다른 씨디를 갈아 끼울 수가 없는 겁니다. -_-; 갈아 끼웠다가 다시 오디오북 씨디를 넣으면... 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기 시작하죠. -_-;

재수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제 오디오북 씨디는 트랙 하나의 길이가 삼십분이 넘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생기면, 듣던 위치를 찾기 위해 차를 세우고 한참 삽질을 해야 합니다. 오디오북 씨디가 아니라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네. 아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죠. 테이프는 그 구조상 '재생을 멈춘 위치를 항상 기억할 수 밖에 없도록 생겨먹은' 매체이니까요.

EIKI 7070 CD/Tape Player

EIKI 7070 CD/Tape Player


결국 '더 좋은 음질'을 위해 휴대성과 편의성의 일부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음질 면에서는 과연 100% 만족스럽나요? 제가 주로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듣는 차량 안은 음악을 듣기에 그다지 만만한 공간이 아닙니다. 외부의 소음이 100% 차단되지도 않고 (차단되면 위험하겠죠?) 너무 소리를 올리면 뒷자리쪽 어딘가에서 음이 찢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부실한 공간이에요. 어차피 차 안은 '그저 적당한 수준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상관없는 공간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적어도 차 안을 기준으로 본다면, 테이프가 CD로 대체된 것은 대부분의 가난한 오너 드라이버들에게는 그다지 이득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해요. CD나 MP3 시스템 같은 것을 차 안에 둬 봐야, 어차피 운전하면서 이런 저런 조작을 하기도 난감한 노릇이고,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좋아하는 음반이나 오디오북을 선택해서 틀어놓는 것이고보면, 뭐 테이프 정도도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 것이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프로젝트 전반기에 사용자 요구사항을 어느정도 고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작성한 유스케이스는 나중에 저 같은 이상한(?) 사용자가 등장하게 되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일단 그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해결책은 하나 뿐입니다. 저 같은 사용자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요구사항 문서를 무시하거나.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그다지 좋은 일은 못되죠. 제 차 안에 달린 CD 플레이어는 저라는 사용자를 무시하고 설치된 솔루션이라고 봐야겠네요. ㅋㅋ

그래서 저는 그놈만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해요. 기능도 그만하면 충분하고, 외관도 그럴싸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이것 저것 풍부한 편입니다만, 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뭔가가 좀 모자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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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10.24 00:02
오늘 출간된지 이틀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책을 받았습니다. 바로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해석(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Computer Programs. SICP로 줄여서 부르기도...)"의 2판입니다. 인사이트에서 내놓은 번역본입니다.

책을 받자마자 지하철 안에서 25페이지 가량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칭찬 일색이라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뭔가 압도되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25페이지까지는 전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더군요. -_-; 왜 그런가 잠깐 생각을 해 봤는데... 적어도 28페이지까지 이 책은 여타의 C 책이나, 여타의 Java 책이나, 여타의 C++ 책이나, 여타의 Ruby 책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40페이지까지도 계속 그런 식입니다. Scheme(Lisp의 후손 쯤 되는)이라는 언어의 문법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거든요.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41페이지 부터입니다. 책의 일부분을 잠깐 인용해보죠.

스스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프로그램 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머릿 속에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전문 사진작가가 되려면, 담고 싶은 장면을 잡아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노출이나 현상 조건에 따라 어떤 곳이 얼마나 나올지 미리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사진의 틀을 잡고 모자란 빛을 더하고 조리개를 맞추고 사진을 떠내는 따위 일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바라던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프로그램 짜는 일도 이와 똑같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야 할 지 미리 정해놓으려고 짜는 게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전문가가 되려면, 여러 가지 프로시저(절차)가 만들어 내는 프로세스(과정)을 미리 그려낼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이런 기술을 깨닫고 익힌 다음에야 생각한 대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는 지 배울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제가 들었던 프로그래밍 언어 관련 수업에서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위의 한 단락만 봐도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느낌이 좀 오지 않으시나요?

하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우선 Scheme(혹은 Lisp) 라는 '생소한' 언어에 대한 알러지 반응이 그것이죠. 이 언어는 우선 널리 사용되는 언어가 아닙니다. C/C++/Java/Ruby 등등의 절차형 언어의 후손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죠. 예전에 논문 자격시험 보겠다고 멋모르고 프로그래밍 언어 과목을 신청했다가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한 선택이었던지 ㅋㅋ) Erlang이라는 언어를 일주일 만에 떼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Erlang이 Scheme과 아주 비슷합니다) Erlang[각주:1]이 제가 알던 프로그래밍 언어들과는 아주 달라서, 무척 혼이 났었습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 뿐이지, Erlang이라는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특별히 어렵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배워야 할 문법적 구성물들은 단순하고 간단한 편이죠. '뭔가 색다른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편인 독자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번째 진입장벽은, 이 책에 담긴 내용들에 대한 '신화'에 가까운 부풀려짐이죠.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프로그래머라면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그런 내용들에 불과합니다. 다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보느라 너무 바빠서 (돌이켜보면 세상은 얼마나 빠르게 변해 왔습니까? 웹 개발에 사용된 프로그래밍 언어만 따져봐도 bash, Perl, C/C++/Java, PHP, 그리고 최근에는 Ruby까지... 언어가 아닌 개발 프레임워크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JSP, Rails, Spring 등등...) 본질적인 문제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거에요. 그러니 '프로그래밍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 +

이건 어디까지나 사견입니다만, 저는 이런 책일 수록 화장실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화장실에 대한 세간의 선입견이 좀 드러워서 그렇지, 사실 화장실은 굉장히 고즈넉할 뿐 아니라 (뿌지직거리는 소리만 빼면), 세상사의 구질구질함에서 한발짝 비켜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만, 세상은 곧 우(곧, 근심)입니다. 따라서 세상사라는 것은 곧 근심의 원인이자 근심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불가에서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사실 세상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요. 먹고 살려면 불가피하게 세상에 발을 담구게 됩니다. 불가도 결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죠. 그런데 유일하게 '화장실'에서는, 그런 먹고사는 문제(곧, 근심)를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배설을 통해서.

그러니까 저는 이런 책일 수록 화장실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사에서 한발 비켜서서 모든 근심을 버릴 수 있는 곳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상관하지 않으며) 오직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는 것, 멋지지 않습니까?

다만 한가지 유의할 점.

화장실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치질에 걸릴 수 있습니다.



  1. Ericsson에서 개발한, 선언적/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 [본문으로]
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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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저도 화장실에서 보는 책이 꼭 있는데 - 설득의 심리학 같은.- 화장실만큼 정말 집중 잘되고 머리에 쏙 들어오는 곳이 없더군요
    요즘은 게으름으로 인해, 지하철 출퇴근길에 책을 주로 읽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마치면 꼭 한번 읽어 보고 싶네요 ^^;

    2007.10.24 12: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화장실에서 "솔라리스"라는 SF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

      2007.10.24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2. emilie

    잘 봤습니다.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

    2007.10.25 14: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명저라길래 원서를 주문해놨습니다. 이제 보니 이 책은 곁에 두고 꾸준히 봐야 되는 것이었군요. 이거 화장실에서 꼬부랑 말을 접하면 응가도 곱게 나오지 않겠는데요. :)

    2007.10.25 22: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07.10.12 13:43
APNOMS 2007 학회에 참석중입니다. 삿포로는 정말로 조용한 도시로군요. 학회장이 있는 컨벤션 센터 주변도 컨벤션 센터라는 느낌 보다는 '상당히 한적한 부도심'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 정도로 조용한 도시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날씨는 6도~15도 정도로 쌀쌀한 편입니다. 학회장 분위기도 조용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APNOMS는 그렇게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학회는 아닙니다. 발표자 상당수가 영어에 그다지 능통하지 못한 데다, 참석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은 편이 못됩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학회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중입니다.

하긴 이런 '심심함'은 어차피 학회 성격에 따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OOPSLA같이 소프트웨어 공학 전반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회는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프로그래머들이 많아서 실제로 실무에 부닥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만, APNOMS같이 네트워크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을 주로 하는 학회에서는 실무에서의 노하우보다는 어떤 '컨셉'이나 '주제'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경청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입니다. 요즘은 대안적인 학회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P-CAMP같은 것이 그 한 예가 되겠습니다) 아직까지 학교 중심의 학회에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컨벤션 센터 전경

컨벤션 센터 전경



컨벤션 센터 전경

컨벤션 센터 전경


학회가 끝나면 오늘은 마지막으로 참석한 대학원생들과 저녁약속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다음에는 호텔로 돌아가서 출국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호텔방은 일본답게 좁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방의 1/2 정도는 욕실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2 정도는 침대, 벽에 붙어있는 책상, TV, 냉장고등이 있습니다. TV는 냉장고가 받치고 있습니다. -_-;

TOYOKO INN

TOYOKO 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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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10.10 18:25
삿포로 라는 곳입니다. 위키백과를 뒤져보니 삿포로라는 곳은 이런 곳이로군요.

삿포로 시(일본어: 札幌市)는 일본 홋카이도도청 소재지이고, 정치, 경제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많고, 1972년에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정령지정도시이고, 또 내륙에 위치하는 도시로서는 인구가 가장 많다. 면적도 전국의 시 가운데 여덟 번째로 크지만, 산림이 많아서 인구 밀도는 1,666.51명/km²로 정령지정도시 중에서 네 번째로 낮다.

"삿포로"라는 지명은 아이누어의 "삿 포로",サッ・ポロ(건조하고 넓은 땅), "사리 포로 벧"サリ・ポロ・ペッ(큰 습지가 있는 곳) 등에 유래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홋카이도 개척의 거점으로서 미국식의 계획 도시를 건설했다.

메이지 시대 초에 홋카이도의 개척이 시적된 당시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혼슈에서 가장 가깝고 무역 항구도 개설된 하코다테 시(函館市)였으나 개척이 진행됨에 따라 삿포로에 인구가 집중하게 되었다.

1972년 동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되었다. 매년 2월에 열리는 눈축제는 길가의 넓은 공원에서 눈을 사용해서 세계의 유명한 건물이나 인물 상을 만들어 전시하는 축제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 출처 : 위키백과


그런데 저는 삿포로에 오니까 맥주밖에 생각나는게 없습니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출처 : 켄의 홋카이도 이야기

제가 워낙에 맥주를 좋아해서 맥주만 보면 환장을 하는데, 일본은 가는 호텔마다 로비에 맥주 자판기가 있어서 환장하겠습니다. -_-; 거기다 동전 금액에 대한 착시현상때문에 (일본은 동전 100엔이 우리나라 천원꼴이잖아요?) 자판기만 보면 동전을 털어넣고 싶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저녁 먹기 전인데도 이러니 저녁 먹고 나면 어떨라나...

(글쓰는 도중에 저녁먹고 왔습니다)

제 손에는 지금 삿포로 맥주가 한병 들려 있습니다 -_-; 그런데 삿포로에는 삿포로 맥주 박물관도 있네요?

삿포로맥주 박물관은 일본 유일의 맥주박물관으로 1890년에 건설되였습니다.맥주박물관은 맥주에 관한 100년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며 현재 홋카이도 유산에도 선정되였습니다.

삿포로맥주 박물관은 1987년에 개관하여 맥주의 지식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2004년에 개장하였습니다.일본에서 유일한 맥주박물관으로 삿포로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본 맥주산업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1890년 외국인 기사의 지도하에 제당회사 공장으로 건설된것이며 삿포로 구 홋카이도청과 더불어 메이지 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문화유산입니다.

삿포로맥주 박물관의 고풍건물과 맛있는 맥주로 해마다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관내에는 일,중,영,한 4개국의 판플렛(오른쪽 그림)이 준비되였어 박물관에 대해 한층 알기 쉽고 즐길수가 있습니다.

-- 출처 : 관광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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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10.08 14:13

어디선가 초대를 해 왔길래 Facebook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입을 했습니다. 광고도 거의 없고, 인터페이스도 깔끔한 편이라 썰렁하긴 하지만 프로파일을 만들어 봤죠.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가서 대문에 걸린 글이나 사진 같은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오늘 가 보니 Drunken Korean이라는 제목으로 https://www.youtube.com/watch?v=WmIwpJTxDVo YouTube 동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더군요. 술취한 한국인이라?

그러고보면 헐리우드 무비에서 Korea라는 국적을 가진, 혹은 국적을 가졌던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인 수퍼마켓 주인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영화 [폴링 다운]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인은 대개 수퍼마켓 주인이거나, 세탁소 주인이거나, 뭐 그런 식이었죠. 거기다 대부분 대단한 수전노들로 그려지고는 했습니다. 그나마 가장 긍정적인 한국인의 모습은 최근 [디스터비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중립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외국인이나 이민자들을 타자화시키는 경향은 전 세계적으로 워낙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서, 헐리우드 영화에 한국인이 그렇게 그려졌다고 대놓고 뭐라고 하기도 사실 좀 그렇긴 해요. 생각해보면 미국인들이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거나 타자화시켜온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제 3 세계(이 말도 타자화의 산물이기는 합니다) 국가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에게 잔인하기 그지 없었거든요. (굳이 구체적인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 진출한 외국인 노동자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오늘 문득 저 동영상을 보다보니 화가 치밀더군요. 저 동영상은 한국에서 찍은 동영상이에요. 한 국도를 만취한 초로의 남자가 허위허위 걸어가는 장면을 찍은 것이죠.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간 겁니다. 세계 어느 나리에건 술에 취한 남자는 있게 마련이죠. 그런데 그 장면을 누군가가 찍어 재미삼아 YouTube에 올린 겁니다. 인터넷 특성상 원래 그 동영상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고 치더라도, Drunk Korean이라는 제목을 붙인 유포자의 의도는 분명 음험해요. 한국인에 대한 경멸적 시선을 대 놓고 드러낸 것이죠.

하지만 YouTube라는 공간이 워낙 이분 저분 사람도 많고 탈도 많은 공간이니 거기까지는 접어줄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문제는 Facebook이라는 공간의 South Korea 네트워크에 그 동영상 링크가 올라왔다는 겁니다. Facebook의 South Korea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에요. 그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죠. 이런 사람들 중에 한국인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그 인성이란 것이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행위는 여러가지 면에서 좋지 않습니다. 어떤 집단에 속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라는 점에서 나쁘고, 인터넷이라는 곳이 나쁜 이야기는 너무나 빨리 퍼지면서도 또한 아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곳이라는 점에서 나쁩니다. 결국 이런 식의 삐딱한 시선들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게 되어 있고, 공유 기능을 사용하면 그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결국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안좋은 점은, 그 동영상의 출처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이런 동영상 링크가 재한외국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 사는 내 친구가 한국인은 다 그렇다더라'고 말하는 거하고 똑같은거잖아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한국인은 술주정뱅이이다'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겠지만, 이런 식의 동영상에 반복노출 되면 '한국인들은 술이 떡이 되는 걸 좋아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게 될 날이 올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보니, 화가 치미는 걸 어찌할 수 없군요.

쩝 입니다 쩝. -_-

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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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남을 비하하거나 안좋게 표현되는미디어들은 아무리 UCC세상이라도 자제되야 되겠습니다.

    2007.10.08 18: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07.10.10 10:32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07.10.08 02:07
평판이란 무엇일까요? 평판이란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이미지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지요. 좋은 이미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래머라는 부류의 사람들을 세상은 굉장히 단순하게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길고 흰 손가락을 가진 마르고 성마른 외모를 가진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남성으로, 안경을 착용하였으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람과 소통하는 것 보다는 국방성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는 데 더 재미를 느낀다.' 뭐 이정도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프로그래머', 엄밀하게는 IT 업계 종사자의 이미지죠.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아마 헐리우드가 단단히 한 몫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보다는 '관련 업게 종사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를 더 중시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어차피 모든 프로그래머를 다 똑같이 취급하므로 (그런 점에 있어서는 군대 계신 분들과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ㅋㅋ)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에게나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여러가지로 이롭다는 것이죠.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라구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 * *

그렇다면 프로그래머는 '다른 프로그래머들' 혹은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근무자들'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보다 개선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가장 간단한 방법 하나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각주: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책꽃이에 책을 꽂아 놓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들에게 있어서 책은 참고서로서의 활용도가 더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책을 꽂아놓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자주 보는 책들을 책상위에 꺼내 놓고, 위의 그림처럼 쌓아놓도록 합시다. (제목이 잘 보이도록 쌓아놓으면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프로그래머임에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책을 쌓아놓으면 책상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무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사가 파티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상사는 당신의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을 보고 당신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책상 위에 부여된 무질서는 당신의 이미지를 보다 신비롭게 바꿔줄 것입니다.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 너무 깔끔한 책상은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도록 하려면, 책상 위에 쌓아둔 책들을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으로 셔플(shuffle)하는 것이 좋습니다[각주:2]. 그래야 당신이 그 책들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책의 목록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급적 뭔가 '있어보이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만일 C++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프로그래머라면, Template Metaprogramming에 관한 책을 구매해서 쌓아두면 좋을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또한 '쉽게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일 수록 효과가 높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Donald Knuth 교수의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시리즈가 이미지 관리용으로는 최고의 도서라고 할 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쌓아둔 책에 대해 누가 질문을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그럴때는 최근 널리 알려지게 된 사자성어대로, '소이부답'하면 됩니다. 씩 웃어주시고, '직접 읽어보세요'라고 해주세요.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중간에 버버거리게 되면 당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게 됩니다. '보시면 알게 됩니다'가 보다 Guru 적인 대답입니다. 그렇게 해도 상대방이 계속 미심쩍어한다거나, 질문을 해 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럴때는 '글쎄 저도 공부중이라서요'라고 해 주는게 가장 낫습니다. 말을 많이 하려고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되니까 가급적 이런 저런 변명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간혹 진짜 고수가 당신의 도서 목록을 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거나,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을 여는 순간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토해내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가급적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두세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두고 외워두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할 때 대답으로 써먹을 수도 있어 좋습니다.



  1. 물론 농담입니다. [본문으로]
  2. Life is Shuffle. [본문으로]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완벽하군요. 이런 비법을 알고 계셨다니.

    2007.10.09 20: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ssoon

    정말로 완벽합니다.

    2007.10.16 09: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저는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수정해봤습니다. ^^ 글이 참 재미나내요.
    잘 들어두세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있으면 겸손하고 유연한 개발자라는 이미지를 보다 공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9.04.14 18: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낭만고양이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9.04.28 23:33 신고 [ ADDR : EDIT/ DEL ]

Thoughts2007.09.09 22:48

사실 개발자로서 '소통'의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은 채 독야청청 가끔 책이나 들여다보고 지식의 외연을 넓혀가는 데 지나치게 만족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 블로그 질이다 뭐다 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와중에.

"에자일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알고보니 에자일 이야기의 운영자님은 꽤 유명한 분이더군요.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았으니 개발자로서는 지나치게 게을렀던 셈이지요 ㅋㅋ)

그 블로그에 포스팅된 기사를 뒤적거리다보니, "야근 금지"를 모토로 하는 한 회사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알고보니 이 회사도 꽤 유명한 회사더군요 -_-


"대체 너는 아는게 뭐냐"


라고 물으시면 할말없3 ㅜㅜ

야근 금지라... 사실 모든 개발자의 꿈이기도 하죠. 야근 금지는 다른 말로 하면 칼퇴근 정도로 바꿀 수 있겠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던 때, 저는 칼퇴근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코딩도 해야하고, 때로는 전화도 받아야 하는 팍팍한 벤처에서 칼퇴근이라는 것은 언감생심 꿈꾸기 민망한 소망이었죠.

+ + +

저의 경험상, 칼퇴근은 '숙련도가 어느 수준 이상 상승한 프로그래머' 혹은 '요구사항의 변화를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래머' 또는 '을보다는 갑의 지위에 더 가까운 계약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래머'라야 누릴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입니다.

숙련도가 어느 정도 상승한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코딩 경험을 라이브러리 화 해 놓을 수 있습니다. 그 축적된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다음 업무에 드는 코딩 시간을 배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프로그래머가 하게 되는 업무 영역에 큰 변화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이 프로그래머의 순수 코딩 시간은 맡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 마다 exponential하게 감소하겠군요 :-P

물론, 그러려면 '업무 영역에 큰 변화가 없다'는 가정이 계속적으로 유지가 되어야 합니다. '업무 영역에 큰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근무하려면, 회사가 하는 업무 형태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한 회사의 업무 영역은 제가 근무하는 1년 동안 두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웹 개발이었는데, 나중에는 네트워크 장비 개발로 업무 영역이 바뀌었죠. 게다가 근무하는 동안에 다른 업체의 용역 개발을 수행할 일도 있어서, 업무 영역에 변화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개발자로서는 처음 맡아보는 업무들이 태반이었으니... 능력 부족으로 자진 퇴사한 뒤 대전으로 튀었습니다만, 지금도 그 때 좀 더 잘해볼껄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용역을 수행하더라도 그 용역의 범위에 일관성이 있으면 좀 낫습니다만, 없는 경우에는 개발자로서는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코딩도 해야하고, 저런 코딩도 해야하니까요. (심하면 서버 코딩만 전문으로 하다가 GUI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먹고 살자면 그런 일도 생깁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역할이 '을'에 가까울 수록 이런 일은 더 자주 생깁니다. 대개의 경우 '을'은 '갑'이 요구사항을 아무리 자주 바꾸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요구사항이 바뀌면 코드를 뒤엎어야 하는 일도 늘어나고, 야근 횟수도 늘어납니다. (물론 그런 것 까지 예측하여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수퍼 코더라면야 문제는 또 다르겠습니다만... ㅎㅎ)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칼퇴근 맨'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서 '자기 분야에서 숙련도가 어느 수준 이상 상승한 프로그래머'가 되거나, '요구사항의 변화를 엄격하게 통제할 능력이 있는 상사' 밑에서 일하던가, '잘 정리된 솔루션을 가지고 있고, 그런 솔루션에 대한 꾸준한 개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비전도 있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거의 항상 갑의 위치에서 계약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이도 저도 안되면 '출중한 개발자 및 컨설팅 그룹'에서 일하거나 해야 합니다.

+ + +

저는 대전으로 튄 후 5년간 꾸준히 칼퇴근 맨이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거의 항상 갑의 위치에서 계약을 하는 회사'에서 일한 탓도 있었고, 스스로 '요구사항의 변화를 칼같이 짜른' 탓도 있었고(그래서 욕도 엄청나게 얻어먹었습니다 ㅎㅎㅎ), 나름대로 5년동안 한 회사에서 굴러먹다 보니 제 분야에서 '숙련도가 어느 수준 이상 상승한' 탓도 있었습니다. 대전이라는 환경이 서울보다는 좀 살기에 널널한 탓도 있었죠.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지배적인 요인 같기도 하군요 ㅋㅋ)

앞서도 말했듯, 칼퇴근은 개발자의 꿈입니다만, 그만큼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런지, 야근금지를 모토로 하는 저런 회사가 참으로 신기해보이기도 하고, 대전에서 보낸 지난 5년동안의 시간이 좀 아깝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좀 치열하게 생활했었으면 아마 저런 회사나 개발자 그룹에서 좀 더 큰 꿈을 펼쳐보겠다...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뭐,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찌 어찌 해서 야근 안하는 프로그래머가 되었으니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한 셈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ㅎㅎㅎㅎㅎ

아무튼, 제 입장에서만 보자면 야근은 안하는 게 낫습니다. 야근을 상습적으로 하게 되면 낮 동안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야근하면 되지...'하는 생각에 심각한 업무를 밤에 미뤄두게 됩니다. 체력도 별로 안좋아지고요. 낮 동안에 가급적 모든 업무를 재빨리 처리하고, 밤에는 차라리 시간날때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제가 한동안 애들을 다 재운 밤 열시 이후에 회사에 나와서 야근을 하고 담날 다시 정상근무를 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한 두어달 했던 적이 있는데요 (소스코드를 날려먹는바람에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ㅎㅎㅎㅎ 거기다 애도 봐야하고 아흑 ㅜㅜ)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만 그 뒤에 정신상태가 피폐해져서 한 한달가량은 뭘 제대로 할 수가 없더군요.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그렇다면 프로그래머가 추구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로군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거... -_-;;

사실 그 이외의 문제는 '환경'의 문제이고, '환경'의 문제는 프로그래머 맘대로 콘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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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09.04 11:27
오늘 일간지를 보다 보니 "트위스트김, 외로운 투병생활"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더군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한때 대한민국 영화사를 풍미했던 배우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스러져가는 것이 마음이 좀 아프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트위스트김은 어떻게 보면 인터넷 문화의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돈 버는 인간들 중 상당수가 포르노 관련 업자들"이라구요. 그런 포르노 업자들이 왜 트위스트김이라는 배우의 이름으로 포르노 사이트를 만들었는지, 솔직히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가 한 배우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요? 물론 성이라는 것 까지 팔아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 그런 것 까지 돌아볼 겨를은 아마 없었겠죠.

어떻게 돈을 벌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좀 지켜가면서 벌었으면 해요. 아무튼, 트위스트김 선생님이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네요.

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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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08.31 23:50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로 지칭하며 살아온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말 마따나 세상은 빠르게 변해 CORBA가 SOAP로, OPEN API로 둔갑하더니 어느새 사람들은 SOA와 Web 2.0, Ajax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웹은 진화했고 사람들은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도 웹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연구소에 틀어박혀 프로토콜 스택이나 짜다 보니, 가끔 동종업계 사람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 뒤처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던져봅니다.

사실 지난 10년간 제가 보는 책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위해 웹 관련 프로그래밍 서적을 보긴 했지만, 대부분의 코딩을 C++/Make/gcc의 조합으로 해 오고 있으니, 보는 책도 언제나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사람들이 웹을 통해 연결되고 있는 동안, 저는 남들이 다 해먹고 지나간 지 오래인 프로토콜 스택같은거나 땜빵으로 만들면서 연구실 한켠에서 홀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가끔은 몹시 외롭기도 합니다. 그나마 코딩이나 걸출하게 잘 할줄 알면 스스로 기꺼워할 시간이나 있겠습니다만, 참고서나 예제 없이는 코딩 한줄이 힘든 저로서는 가끔 밀려오는 땜빵성 일거리들이 버겁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더 외롭습니다. 흉금을 터놓고 술이라도 한잔 같이 나눌 친구들이 없는 이 대전에서는, 더욱 더 외롭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런 외로움을 어떻게 털어야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보면, 제 눈은 아직도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20대의 눈에 보이는 사내는, 이제 30대 중반입니다. 아저씨 냄새도 완연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슬플 때도 있습니다. 운동도 하고 살을 빼려고 애도 써보지만, 헛 먹은 나이도 나이인지라 얼굴에서 지우기가 여간 난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울 보기도 가끔은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오년간을 잘 마무리 해야 멋진 사십대가 될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리고 40대가 되는 그 순간에는, 뭔가 아는 것이 아주 많은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어 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월급이나 많이 받게 되던지요. ㅋㅋ

하지만 제 이런 바람은 그냥 바램으로 그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삼십대 중반이 넘어선 아저씨가 갑자기 오년만에 프로그래밍의 달인으로 둔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거기다, 설사 프로그래밍의 달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알아줄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게 또 문제에요. '나이 40이 되었는데도 프로그래밍 말고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을 누가 취직시켜주겠어요? 쌩쌩하게 일 잘 할만한 삼십대들도 쌔고 쌨는데...

그러니, 땜빵 일거리나마 하게 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지금 직장에 엉덩이 꾹 눌러붙이고 대충 대충 사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도 사실 피곤해요. 비위 맞춰줘야 할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것인지...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건 컴파일러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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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rahero

    전 컴파일러도 절 싫어 하는것 같아요.
    ㅜ_ㅜ..

    2007.11.16 2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라이언

    마지막 줄이 절 슬프게 하는군요. ㅠㅠ

    2007.11.26 16: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