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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7

올드보이 그는 나를 탁자에 눕히고 묶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어떻게 죽여야 속이 시원할까 고민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답을 들어야 지난 10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곧 그는 핏물이 엉겨붙은 망치를 한쪽 어깨에 가만히 대고는 탁자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망치로 머리가 짓이겨지는 상상을 하자, 속이 뒤틀려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몸을 뒤틀며 공포에 신음하자, 그는 물끄러미 나를 굽어보더니 불을 껐다. 이윽고 검은 양복에 감긴 그의 몸은 사라지고, 얼굴과 망치를 쥔 손, 그리고 인광에 번득이는 눈 만이 살의를 내뿜으며 다시 탁자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를 가둔 것은 인간의 정신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아.. 2021. 9. 12.
쓸모없다 말했지만, 영화에 나올 정도로 쿨한 초능력을 갖는 것은 그것 자체로 초능력의 영역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가령 내 친구 A는 새끼손가락을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변화시킬 능력을 가졌으나, 그 능력을 쓸 곳을 찾지 못해 지금껏 괴로와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수의 초능력자들이 '이걸 어따 써'라는 철학적 질문에 평생을 낭비하고 결국에는 불행한 표정으로 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야 말로 초능력자에게 주어진 하나의 천형. 그 굴레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온전한 시민으로 바로 선 초능력자를 찾는 것은, 스테인레스 합금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파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이다. B는 나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로, 굉장히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문제던 보는 순간 그것과 똑같은 문제의 레퍼런스를 순.. 2021. 9. 12.
우연의 음악 이야기가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선생님 말고 예약된 환자분이 없으니 그냥 편하게 말씀드리도록 할께요. 제가 알던 분 가운데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손은 귀하지만 굉장히 유복한 집안의 외손자로 태어난 분이었죠. 그 분 외가가 어느 정도로 손이 귀했냐면 제사를 지내면 옆으로는 오는 분이 없어요. 위아래 직계존비속으로 딱 3대만 모이면 끝. 그 정도로 손이 귀한 집안이었죠. 그런데 돈은 많았어요. 어느 정도로 많았냐면 그 당시에 그 집을 찾으려면 대연동 가운데에 티비 안테나 있는 기와집. 거기로 와라. 이런 식으로 안내가 가능할 정도로 많았어요. 사업을 하셨다는데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겠어요. 집안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데 좀 수상하죠. 아무튼 손이 귀한 탓에 아들 며느리는 일찍부터 들였나봐요. 그.. 2021. 9. 6.
초능력 세상의 기대와는 달리, 초능력자들은 대체로 불우한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초능력이라고 하면 하늘을 날고 외계인을 물리치며 약한 자를 수호하는 영웅을 떠올리지만 그렇게 쌈빡한 인생을 사는 초능력자는 많지 않다. 왜냐? 그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이 쌈빡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클라크 켄트는 하늘을 날고 눈으로는 레이저를 쏴댈 수 있었으며, 피터 파커는 거미줄을 뿜으며 벽을 기어다닐 수 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공간에 낸 구멍으로 어디든 오락가락할 수 있었고 부르스 웨인은 먹고 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돈으로 히어로들을 고용해 지 멋대로 세상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斷초능력모임'에서 만난 23인의 찌질이들은 '오늘도 내 초능력이 나보고 뭐라고 그러오'를 하루종일 뇌까린 얼굴로.. 2021. 6. 14.
당신의 커리어가 서쪽으로 간다면 (3) 그렇다면 개발자의 일상에서 불확실성은 어떤 형태로 등장하는가? 불확실성은 내가 잘 모르는 것,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에서부터 등장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주로 소프트웨어 납기에 관련된 것만 살펴보면 주로 다음과 같다. 내가 이용하는 소프트웨어/서비스의 업데이트 주기 또는 릴리즈 사이클 내가 속한 팀과 다른 서비스 소유자 또는 팀과의 협업 형태 사용자로부터의 요구사항 시니어 리더십으로부터의 우선순위 변경 요청 여러 프로젝트 사이의 컨텍스트 스위칭 오버헤드 내가 이용하는 소프트웨어/서비스의 가용성 전부 시간을 들여 따져볼 가치가 있는 사항들이지만, 우선 제일 마지막 항목, 그러니까 내가 이용하는 소프트웨어/서비스의 가용성이 어떻게 내가 통제 불가능한 형태의 불확.. 2019. 10. 13.
당신의 커리어가 서쪽으로 간다면 (2) 앞선 글에서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것이 곧 커리어 관리가 될 수도 있음을 살펴봤다. 불확실성 관리가 없는 계획은 곧 신뢰할 수 없는 계획으로 바뀌게 마련이고, 신뢰할 수 없는 계획을 내놓고 납기일을 약속하는 개발자는 곧 관리자와 다른 팀의 신뢰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은 대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보통 불확실성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형태가 없는 것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불확실성의 형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한 가지만 살펴보고 넘어가자. 우리는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을 적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기 위해 애자일 방법론을 도입해 왔다. 애자일 방법론은 (특히 스크럼은) 2주 단위의 스프린트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 2019. 9. 26.
당신의 커리어가 서쪽으로 간다면 (1) 개발자로서 당신의 커리어가 서쪽으로 가는 것은 당신의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은, 당신이 약속한 일정이 번번이 어겨지는 것이다. 왜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인지는 보통 회사라는 곳에서 납기일이 어떻게 관리되는지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당신의 회사는 보통 몇 단계의 보고 체계를 따른다. 이 보고 체계의 상층부에서는 큰 그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납기 일정을 맞춘다. 보통 이 납기 일정은 아래쪽 팀이 보고한 추정치에 근거하는데, 이 추정치가 부정확하면 부정확할 수록 위쪽으로 보고되는 수치의 정확성은 낮아진다. 이 수치의 정확성이 낮아지면 프로젝트는 일정 대로 마쳐지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문.. 2019. 9. 23.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 (3) 앞선 글에서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 살펴봤다. 그러나 말했듯이 직장에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온전히 소거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에 가도 그런 스트레스가 있고, 수도원에 들어가도 그런 스트레스는 생긴다. 사람과 함께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직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다. 문제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다. 커뮤니케이션 오버헤드가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면, 조직원으로부터 대략 두 가지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반응과, 대체 왜 그런 일에 업무 시간을 써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회사에서의 커뮤니케이션도 업무라는 .. 2018. 2. 4.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 (2) 앞선 글에서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우면 스트레스가 아니다. 정말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이것 저것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스트레스의 한 가지 요인으로 '욕심'과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이 두 단어에 연결되어 있지만, 스트레스가 드러나는 표면적인 양상만 두고보면 그 두 가지로 쉽게 치환하기 어려운 문제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일하기 위해서 간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정작 일로 받는 스트레스보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 같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저, 이 일을 작년에 진행하셨던 것.. 2017. 12. 31.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 (1) 공기업 생활을 십삼년간 하고 팔자에도 없는 사기업 생활에 도전한지도 어언 삼년이 훌쩍 넘었다. 새해를 맞아 그 삼년 간 깨달은 것을 몇 번에 걸쳐 적어 보려고 한다. 오직, 그저, 까먹기 전에. 아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교훈들이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는 모름지기 '인생은 케바케'라는 대전제에 입각하여,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 말씀도 드리고 싶다. 세상에는 이 글보다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차고 넘친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교훈들이 여러분의 성에 차지 않는다면, back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오는지 부터 깨달아야 한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2017. 12. 28.
시애틀 (8) 시애틀에 처음 도착한 것이 9월 23일이니까 드디어 미국에 온지도 만 2년이 넘었다. 세월은 정말로 화살처럼 날아가 사라진다. 그 진부한 속담이 뼈속 깊이 사무치게 되면 나이를 먹은 거라던데, 드디어 정말로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새로 배속된 부서는 음성 쇼핑 기술을 개발하는 부서다. 소위 '알렉사' 덕에, 아마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서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원자도 많고, 사람도 그만큼 많이 뽑으려고 한다. 그러나 일주일에 서너번씩 면접관으로 뛰어도, 그 가운데 합격자를 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인기가 많은 부서일수록 문턱도 높은 법이다. 그 문턱을 높이는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 최고의 기술자들과 함께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으니,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문턱은 어느새 조금씩 높아진.. 2017. 9. 30.
미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려면 [3] 미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려면 영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본인의 경우 영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가 시니어 개발자로 채용되는 바람에 첫 출근하는 날부터 영어 문제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시니어 개발자에게 최 우선으로 요구되는 덕목 가운데 하나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지에서 접하는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았다. 커뮤니케이션이고 나발이고 간에 뭐가 들려야 일단 시작이라도 해 볼 것 아닌가... 당황스럽게도 정말 첫 한 달 간은 (사람마다 분명 다를테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스탠드업 미팅 뿐 아니라 모든 중요 미팅에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 코치를 동원해도 정말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보이스.. 2017.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