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7.08.31 23:50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로 지칭하며 살아온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말 마따나 세상은 빠르게 변해 CORBA가 SOAP로, OPEN API로 둔갑하더니 어느새 사람들은 SOA와 Web 2.0, Ajax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웹은 진화했고 사람들은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도 웹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연구소에 틀어박혀 프로토콜 스택이나 짜다 보니, 가끔 동종업계 사람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 뒤처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주 던져봅니다.

사실 지난 10년간 제가 보는 책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위해 웹 관련 프로그래밍 서적을 보긴 했지만, 대부분의 코딩을 C++/Make/gcc의 조합으로 해 오고 있으니, 보는 책도 언제나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사람들이 웹을 통해 연결되고 있는 동안, 저는 남들이 다 해먹고 지나간 지 오래인 프로토콜 스택같은거나 땜빵으로 만들면서 연구실 한켠에서 홀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가끔은 몹시 외롭기도 합니다. 그나마 코딩이나 걸출하게 잘 할줄 알면 스스로 기꺼워할 시간이나 있겠습니다만, 참고서나 예제 없이는 코딩 한줄이 힘든 저로서는 가끔 밀려오는 땜빵성 일거리들이 버겁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더 외롭습니다. 흉금을 터놓고 술이라도 한잔 같이 나눌 친구들이 없는 이 대전에서는, 더욱 더 외롭습니다.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런 외로움을 어떻게 털어야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보면, 제 눈은 아직도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20대의 눈에 보이는 사내는, 이제 30대 중반입니다. 아저씨 냄새도 완연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슬플 때도 있습니다. 운동도 하고 살을 빼려고 애도 써보지만, 헛 먹은 나이도 나이인지라 얼굴에서 지우기가 여간 난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울 보기도 가끔은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오년간을 잘 마무리 해야 멋진 사십대가 될텐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리고 40대가 되는 그 순간에는, 뭔가 아는 것이 아주 많은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어 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월급이나 많이 받게 되던지요. ㅋㅋ

하지만 제 이런 바람은 그냥 바램으로 그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삼십대 중반이 넘어선 아저씨가 갑자기 오년만에 프로그래밍의 달인으로 둔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거기다, 설사 프로그래밍의 달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알아줄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게 또 문제에요. '나이 40이 되었는데도 프로그래밍 말고는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을 누가 취직시켜주겠어요? 쌩쌩하게 일 잘 할만한 삼십대들도 쌔고 쌨는데...

그러니, 땜빵 일거리나마 하게 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지금 직장에 엉덩이 꾹 눌러붙이고 대충 대충 사는 것이 가장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도 사실 피곤해요. 비위 맞춰줘야 할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 것인지...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건 컴파일러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serahero

    전 컴파일러도 절 싫어 하는것 같아요.
    ㅜ_ㅜ..

    2007.11.16 22:21 [ ADDR : EDIT/ DEL : REPLY ]
  2. 라이언

    마지막 줄이 절 슬프게 하는군요. ㅠㅠ

    2007.11.26 16:4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