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8.09.26 14:16

존 그리샴은 국내에서는 소설보다 아마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가일겁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많은 영화들이 제법 히트를 쳤으니까요. 저도 그의 소설을 단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영화로만 접했습니다. 영어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The Street Lawyer (거리의 변호사) 를 페이퍼백 원서로 구입하기 전까지는요. (이 책은 국내에 이미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Street라는 단어는 마치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지대'라는 인상을 풍깁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죠. 하지만 이 소설이 무대로 하는 '거리'를 방황하는 홈리스(Homeless)들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법 뿐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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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없는 사람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고단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거리의 계절도 겨울입니다. 눈이 내리고, 살을 에일듯한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쉼터에서조차 가족을 누일 자리를 찾지 못한 한 여자가, 어린 자식들과 함께 죽습니다.

그 전 과정을 목도한 한 변호사가, 마침내 거리의 변호사가 되기로 작심합니다. 물론, 그가 그런 마음을 먹은 데는 이 글에서는 다 밝힐 수 없는 복잡한 전후사정들이 있습니다. (다 밝혀버리면 재미 없으니까요.) 어쨌거나, 거리로 간 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미국의 복지 시스템에 경악합니다. 그리고 그 복지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만들려면 전화기를 붙잡고 고함을 지르거나 협박을 하는 단순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절망합니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드디어 7000억 대의 달러 구제금융 조치를 마련하는 데 까지 왔습니다. 신용이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의 부동산을 담보로 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업이 연이어 파산하게 되자,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그다지 달가와햐지 않던 공화당조차 어쩔 수 없음을 자인하고 연일 강도높은 안정책을 정부에 주문하고 있습니다. 대형 금융회사들도 자빠지고 있는 판국에, 재주 있나요. 덕분에 오바마의 지지도는 아직도 매캐인을 소폭이나마 앞서고 있습니다. 배고픔 앞에 강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집이 있던 사람이 집이 없는 상태로 바뀌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를 사람들에게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 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단편적이나마 보여줍니다. 이 블로그에서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했습니다만, 저자는 공화당 집권 이후 미국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이전보다 더 허술해졌다는 비판을 변호사들의 입을 빌어 가감없이 내놓습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절감하기 쉬운 부분부터 쳐나갔습니다만, 지금 경제 상황은 그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효율이나 성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국의 경제 상황에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경제와 그 안전 장치들은 미국보다 나은 수준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의 식품 안전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통제하는 정부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미 지난 소고기 파동이나, 이번 멜라민 사태 등으로 입증됐습니다. 또한 이 정부는 가뜩이나 돈 들어갈 일 많은 경제 상황은 눈에 보이지 않는지, 2%를 대상으로 하는 종부세 감면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부리고 있습니다. 신문의 시론 난에는 비록 "본 사외 기고는 본 신문사의 ... 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위장을 하고는 있지만 벌써부터 "종부세 폐지가 당연한 수순"이라는 기사들이 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누가 현재 경제 시스템을 총관리하고 있는 수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행정부의 수장이 앞장서 나서서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일방통행식 이야기를 해 대고 있구요. 한때 실용과 효율,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는 힘든 이야기죠. '결과가 좋으리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신뢰한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굴러가는 꼴을 보면 도무지 그런 말을 믿어 줄 수가 없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복지라는 건 이미 물건너 간 이야기죠. 좋은 쪽으로 보자면, 그나마 노무현 정부때는 복지 정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꽤 자주 신문에 오르긴 했습니다. (물론 그럴 때 마다 그 정책들은 심히 난타당했죠.) 그런데 요즘 신문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어요. 복지라는 단어가 이미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겠죠.그러니, 주가 지수가 1100대 부근으로 주저앉기라도 하면, 저는 The Street Lawyer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됩니다.

윌 스미스가 출연했던 The pursuit of happiness라는 영화의 주인공도 홈리스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아내와 헤어진 상태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정말로 눈물나게 고생하죠. 그리고 마침내 성공합니다. 영화를 보면, 그들이 이용하는 쉼터(shelter)가 가끔 배경으로 나옵니다. 그 쉼터를 집 삼아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공부를 하죠. (The street laywer에 나오는 쉼터들은 그 보다 훨씬 더 열악합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딱 한가지인데, 그들이 머무르는 쉼터의 나머지 공간을 차지하는 홈리스들이 완전히 타자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윌 스미스가 성취한 성공신화만이 부각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너희도 하려고만 들면 할 수 있어' 식의 불건전한 믿음이 소위 '영화를 볼만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쉽습니다. 감동적인 '남의 이야기'가 끼치는 해악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한 번도 바닥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 바닥인, 혹은 바닥이었던 사람들의 절망이나 슬픔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되는 거죠.

지금 집권한 정부 여당은, 소위 이런 류의 '성공신화'에 굉장히 강하게 계도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술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다 보면 느끼게 되는 '자수성가형' 인간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고통은 견딜만 한 것이다"라는 잣대를 누구에게나 강요하려고 든다는 것이에요. 이런 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신화'가 '우리 모두의 신화'가 될 수 있으려면, 이 사회에는 더 많은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분들이 과연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는 사실이죠.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기회를 갖고 싶은 분들은, 한번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도 그럴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원서로 읽으셔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페이퍼백 가격은 국내에서 구입할 경우 한 팔구천원 하는 것 같네요. 존 그리샴의 다른 소설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읽을거리'의 수준은 뛰어 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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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두루

    그러게요. 미국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는 Sicko를 보면서 그 정도일 줄을 몰랐는데,
    내심 증말 저래? 하며 무척 놀랐었죠..
    그래도 이 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렸었는데...
    지금 2MB가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까 뭐 앞으로 남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이구~~
    요즘에는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잘 뭉치는 거 같애요. 왜그런지,,,
    그 행복의 추구란 영화 보구 나오면서 침을 퇫! 뱉었드랬죠,,, 그 드러븐 계몽주의적 신화들...
    The Street Lawyer란 책이 만만하다 하시니 저도 함 시도해보겠습니다. 근데 그 만만한 기준이 누구의 기준인지,혹시 낭만고양이 님의?~~흑흑ㅠㅠ~~

    2008.09.26 16: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