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12.28 22:53

앞선 글에서, 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상당수의 개발자들은 하청업체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http://blog.job.go.kr/3573


SEE ALSO: "다단계 하청구조는 왜 생기나? (1)"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께서 개발자라면, 아마 이런 질문은 부당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꼭 개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물어야 좀 더 문제의 심각성이 선명히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왜죠? 그 이유를 좀 더 정확히 설명하려면, 여러분과 저는 한 가지 정리에 동의해야 합니다.


Theorem 1: 개발자는 바보가 아니다. 


자. 개발자들이 바보가 아닌 담에야, 하청업체의 일원으로 일하는 부당함을 몸소 겪으며 자신을 소진시켜 가면서 버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 그 바닥에 남아 일하고 있다면, 이유는 딱 하나죠. 


Theorem 2: 어딜 가나 개미지옥이다. 


그 이야기는, 소위 '초중급'을 따져가면서 일할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개발자가 갈 수 있는 직장이 하청업을 전문으로 하는 직장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겁니다. 관련 링크(http://okjsp.net/seq/110080)를 한번 보시면 분위기를 대충 아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악덕 사장에게 걸리면 안된다'거나, '모르면 속는거고 협상하기 나름이다'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있죠. 중급으로 확실히 인정받을 때 까지는 견뎌야 한다는 것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개발자들 사이의 공감대인데요.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Theorem 3: 중급 개발자의 스펙을 쌓을 때 까지는 견뎌야 한다.


다시 말해 초급 개발자로서 고를 수 있는 직장은 '개미지옥' 뿐이고, 중급 개발자가 되어야만 '개미지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죠? 그것은 대한민국의 개발자 소비시장이 철저하게 양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초급 개발자를 소비하는 개미지옥과, 그 이상의 개발자를 소비하는 소위 '더 나은 직장(the better tomorrow)'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죠. 


이 모델은 '하청업체를 떠나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아우성'이 그토록 거센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초급 개발자를 면하는 그 순간까지 (군대 갔다오는 것 보다 한참 더 긴 시간입니다) 개미지옥에서 견뎌야 하는데, 그 과정이 녹록할 리가 없으니 아우성이 나오는 것이죠. 또한 이 모델은, '개발자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다시 말해 '시장에 쓸만한 개발자들이 거의 언제나 부족한 이유'도 잘 설명해 줍니다. 개미지옥은 개발자의 성장을 담보하는 조직이라기 보다, 개발자들을 소진하고 나가 떨어지게 만드는 조직입니다. (물론 거기서 굳건히 살아남은 소수는 중급 개발자의 길을 걷습니다만, 개발자로 입에 단내나게 삽질한 그들이 과연 개발자로 만족하며 아키텍트로 성장할지는 의문이죠. 개발자라는 딱지를 스스로 벗어버릴 가능성도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니 시장에 많은 중급 개발자들이 지속적으로 공급될리가 없지요. 그나마 탄생한 중급 개발자들은 바로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떠나버릴 것이니, 중소 업체들이 쓸만한 직장을 구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집니다. 


자. 그런데 이 모델은 '왜 그토록 하청업체들이 많은지'는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청업체들이 마치 우주의 배경복사처럼 널려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모델일 뿐이니까요. 하청업체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IMF가 도래하기 직전, 대한민국에도 닷컴 바람이 불었었습니다. 이 때 마치 빅뱅처럼 수많은 닷컴 기업과 투자사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IMF의 한파가 겹치자,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무슨 백색왜성마냥 스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닷컴 기업에는 한 가지 자유가 없었는데요. (최근에 더 심해졌습니다.) 바로 실패할 자유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접는 건 사업을 하는 것 보다 더 어렵습니다. 설사 사업을 접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제는 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업을 접고 재기하는 건 사업을 접는 것 보다 만 배 정도는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업을 접는 건 애시당초 안될 말입니다. 어떻게든 사업을 계속해야하죠. (투자사에게서 몇억씩 받은 값은 다 해야 하니까요.) 


대부분의 닷컴 기업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기업이지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업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인력을 활용해 현금장사를 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필요했습니다. 그 중 가장 안전한 것이 바로 하청과 재하청이었죠. 이렇게 해서 1세대 하청업체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지금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창업되는 기업들은 대체로 솔루션 업체이거나 서비스 업체입니다. 서비스 업체들은 보통 투자를 받아 개발을 시작하고 서비스가 망하면 하청업체로 환골탈태하는 수순을 밟는 경향이 있습니다. 솔루션 업체들은 투자를 받아 의욕적으로 솔루션을 완성한 다음에 솔루션이 안팔리면 하청 업체로 환골탈태하는 경향이 있죠. (2, 3, 4세대 하청업체들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Theorem 4. 섣부른 투자 유치가 하청업체로의 변신을 부채질한다. 


투자를 받으면 돈 값을 해야 하기 때문에 ㅈ망했다는 것이 판가름나도 사업을 못 접습니다. 그러니 하청이라도 해야 하죠. 처음에는 부푼 꿈으로 시작했던 창업이 직원들에게는 아무런 꿈도 주지 못하는 회사로 귀결되는 것은 대체로 섣부르게 받은 투자 때문이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서비스 업체는 투자를 받기 전에 서비스를 반드시 먼저 릴리즈 하고, 시장의 반응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도 못받았는데 어떻게 서비스를 개발하냐구요? 그러니까 능력있는 개발자를 영입해야죠. 그게 어렵다구요? 그럼 이런 질문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개발자 한명도 설득 못시키는 아이템으로 어떻게 성공하려고 하셨나요?) 또한 저는, 솔루션 업체라면 투자를 받기 전에 솔루션의 초기 버전을 반드시 먼저 릴리즈하고, 시장의 반응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픈 소스라는 거대한 흐름 덕분에, 요즘은 이런 '입질'을 먼저 해 보기가 굉장히 쉬워졌죠.) 그리고 저는, 솔루션 업체라면 걍 미국에 가서 사업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듯.)


물론, 이렇게 '선 개발 후 투자'라는 모델을 따르면, 창업을 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물론 쉽게 창업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런데 그런 문제를 해소하고 '선 투자 후 개발'을 유도하려면 대한민국에서 '투자로 만들어진 기업을 청산하는 절차'가 굉장히 쉬워져야 하는데, 정말로 정말로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이므로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한 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미지옥'이 계속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요. '개미지옥'에게 계속 돈을 대서 시장을 유지시키는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음 글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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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연재 하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우울한 국내 프로그래머 시장이죠.

    2013.12.30 17: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3.12.28 08:28

요즘 신문을 보면 개발자의 처우에 관한 글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갑을병정무기' 가운데 '무기'에 해당하는 하청을 하는 일도 적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기'라는 자조섞인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러니까 이런 기사의 요지는, 많은 개발자들이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폐해들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폐해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 낮은 임금

(2) 비정상적인 납기일


이 두 가지 요인은 개발자들의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리고, 결국 IT 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결과죠. 월급도 코딱지만큼 주는데 비정상적인 데드라인때문에 집에도 갈 수 없는 날이 많다면, 어떤 사람이 미쳤다고 개발자로 일하고 싶어하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모 기사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상황이 이런데도 아직 업체에서는 인력부족 타령을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겠어요. 아니 사람이 부족한데 왜 개발자의 임금은 아직 저 모양이지? 사실 그렇짆아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당연히 그 가격은 올라가야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도 개발자들의 가치가 전혀 올라가질 않아요. 비정상적이죠.


사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개발자들에게 등급을 매길 때 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정부에서 나서서 모든 개발자들에게 '초급, 중급, 고급'의 딱지를 매기려고 했던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모든 개발자들은 이 바닥에서 일한 기간, 학위 소지 여부 등등 다양한 기준에 따른 '딱지'를 한 장씩 가지고 있죠. 문제는 이 딱지들이 하청 개발자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의 최대치를 규정하는 데 쓰인다는 겁니다. 


보통 하청을 줄 때 쓰는 공급 계약서를 보면, 인건비 비목이 있어요. 그런데 이 인건비 비목을 작성할 때 어떻게 쓰게 되어 있느냐면, 초급개발자 몇명 중급개발자 몇명 고급개발자 몇명을 프로젝트에 투입할 예정이냐에 따라 쓰도록 되어 있어요. 전부 고급개발자라면 인건비로 소요될 비용이 올라가게 될 것이고, 전부 초급이면 인건비로 소요될 비용은 내려가게 되어 있죠.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말이에요. 최대치가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급이 아무리 딸리는 상황에서 하청을 줘도 하청 단가가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청 일을 하는 사람이 존 카멕이라고 해도 돈을 더 받을 수는 없게 되어 있다는 거죠. (응?)


그러니 많은 개발자들은 '개발자 10만 양병론'같은 이야기를 헛소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요. 왜 그렇죠? 이런 형태의 시장에 개발자들을 잔뜩 양성해서 부어 놓으면 (김영삼 정부때 그랬었습니다만) 개발자 1인이 갖는 가치, 다시 말해 한 건의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인건비는 더 내려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기업들은 당장 사람들이 부족하니까 개발자들을 더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고, 정부에서는 그런 요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양인데 이런 상황을 안다면 사실 내 놓을 수 없는 정책이죠.


자. 그렇다면 대체 하청구조는 왜 생기는 거죠?


하청구조는 '내가 직접 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 시키는 것이 싸니까'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IT 프로젝트를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 시키는 것이 더 저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직접 개발하려고 해도 개발자가 없어서

(2) 외주 개발 단가가 저렴해서 


자. 제도적으로 외주 개발 단가를 올릴 방법을 차단한 현 시점에서, 외주 개발 단가는 당연히 저렴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외주 개발 단가가 지금처럼 저렴해지기 전에는 하청이 없었나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 바닥에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는 한 두 해 한 것이 아니고, 개발자 등급제가 시행되기 전에도 이미 하청 구조는 있었거든요. 대한민국의 개발 하청제는 역사가 깊어요. 개발자 등급제가 낮은 개발 단가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 전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실 개발자 등급제 전에도 개발자들을 등급으로 나눠 분류하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인건비를 산정했죠. 개발자 등급제는 그것을 명문화했을 뿐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을 하려면, 다음의 질문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분명해요. 


(1) 정말로 개발할 사람이 없나?

(2) 개발자들이 하청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하청 업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4) 하청 업체가 하청 일만 죽어라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발할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으니까 (저희 회사에서도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넘어가기로 하죠. 사실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따지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시간낭비에 가까와요. 우리 모두 왜 개발자가 부족한지는 알고 있는데,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는 것은 이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식의 질문에 가까와서 전혀 생산적이지가 않죠. 다만 한가지는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실상 정말로 개발자의 수가 적어서라기 보다는, 개발자를 뽑으려고 하는 회사가 정한 특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개발자가 적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왜 개발자가 부족한지를 묻기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왜 개발자가 성장하지 못하는 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실제로 구인 공고를 내는 회사들이 내건 기준을 충족하는 개발자들이 적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위의 (2)~(4)의 질문에 집중할 수 있죠. 하청구조라는 것이 개발자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개발자들이 왜 그렇게 아우성이겠어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보죠. 그렇다면 개발자들이 하청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청일이 싫으면 때려 치고 다른 회사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누가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해 주어야 하나요? 


(1) 옮길 회사가 없다

(2) 옮겨도 마찬가지다

(3) 옮기면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을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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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이런식의 발전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겠습니다. 새마을운동도 아니고 다같이 으쌰으쌰하는 비즈니스가 아닌 갑을관계의 착치구조는 분명 언젠가는 붕괴될거라고 굳게 믿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들의 무리한 원가절감이나, 무리한 요구에의한 lead타임감소가 아닌, SCM에 의한 물류효율화 또한 올바른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된다는것을 마음 깊히 알고 실천해야, 진정한 선진 기업으로 나갈 수 있는 글로벌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013.12.28 08: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