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7.10.26 13:38
LP냐 CD냐. 이 주제는 꽤나 해묵은 주제죠. :-) 그리고 사실 이미 시장은 CD쪽으로 거의 다 넘어가 있습니다. CD때문에 LP도 죽었고, 테이프도 죽었습니다. CD는 테이프정도의 휴대성에, LP 이상의 음질을 제공하는 괜찮은 기록 매체이죠. 다만 문제는 가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LP냐 CD냐 라는 주제를 놓고 설왕설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LP가 선사하는 추억의 사운드를 선택할 것이냐 (감정적인 선택이죠) 아니면 CD가 주는 명료하고 정확한 음질을 선택할 것이냐 (이성적 선택입니다)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왔고, 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수 음악 애호가들은 집에 CD 시스템과 LP 시스템을 같이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사실 음악 애호가라면 집에 LP 판들도 상당수 있을 것인데, CD 듣자고 그 판들을 전부 갈아엎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테이프냐 CD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되었던 바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CD랑 테이프는 '적어도' 음질의 문제에 있어서는 호불호의 문제를 이야기할 만큼 대등하지 않거든요. 음질은 확실히 CD쪽이 더 낫습니다. 그 음질은 오래 들어도 바래지 않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CD 시스템으로 이행하면서 테이프 시스템들을 내다 버릴때,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테이프는 휴대를 위한 매체였습니다. 워크맨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은 음질 문제에 있어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테이프의 부피때문에 주머니에 이 테이프 저 테이프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문제는 물론 있었습니다만, 그런 문제는 CD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는 MP3의 그것과 같았죠. 공 테이프를 마련해서, 듣고싶은 음악을 쭈욱 녹음한 다음에 그걸 들고다니는 겁니다.

그러므로 CD로 테이프를 대체하는 것은 휴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올바른 선택이 아닌 셈이에요. CD가 테이프보다 더 나은 부분이 없거든요. MP3 시스템이 등장하고 나서야 확실히 더 나아지죠.

CD가 테이프 시장까지 말아먹은 덕에, 많은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테이프가 배제되기에 이릅니다. (제 차도 그렇습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불편한게 좀 있더군요. 제 차에 설치된 오디오 시스템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보니, CD를 집어 넣으면 '예전에 재생되던 마지막 위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좋은 시스템은 기억할 수도 있나요? 잘 모르겠군요. 좋은 시스템을 써 본 적이 없어서 ㅋㅋ) 요즘 차를 타고 다니면서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이게 생각 외로 불편하더군요. 오디오북을 듣는 와중에 다른 씨디를 갈아 끼울 수가 없는 겁니다. -_-; 갈아 끼웠다가 다시 오디오북 씨디를 넣으면... 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하기 시작하죠. -_-;

재수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제 오디오북 씨디는 트랙 하나의 길이가 삼십분이 넘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생기면, 듣던 위치를 찾기 위해 차를 세우고 한참 삽질을 해야 합니다. 오디오북 씨디가 아니라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네. 아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죠. 테이프는 그 구조상 '재생을 멈춘 위치를 항상 기억할 수 밖에 없도록 생겨먹은' 매체이니까요.

EIKI 7070 CD/Tape Player

EIKI 7070 CD/Tape Player


결국 '더 좋은 음질'을 위해 휴대성과 편의성의 일부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음질 면에서는 과연 100% 만족스럽나요? 제가 주로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듣는 차량 안은 음악을 듣기에 그다지 만만한 공간이 아닙니다. 외부의 소음이 100% 차단되지도 않고 (차단되면 위험하겠죠?) 너무 소리를 올리면 뒷자리쪽 어딘가에서 음이 찢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부실한 공간이에요. 어차피 차 안은 '그저 적당한 수준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상관없는 공간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적어도 차 안을 기준으로 본다면, 테이프가 CD로 대체된 것은 대부분의 가난한 오너 드라이버들에게는 그다지 이득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해요. CD나 MP3 시스템 같은 것을 차 안에 둬 봐야, 어차피 운전하면서 이런 저런 조작을 하기도 난감한 노릇이고,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좋아하는 음반이나 오디오북을 선택해서 틀어놓는 것이고보면, 뭐 테이프 정도도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 것이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프로젝트 전반기에 사용자 요구사항을 어느정도 고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작성한 유스케이스는 나중에 저 같은 이상한(?) 사용자가 등장하게 되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일단 그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해결책은 하나 뿐입니다. 저 같은 사용자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요구사항 문서를 무시하거나.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그다지 좋은 일은 못되죠. 제 차 안에 달린 CD 플레이어는 저라는 사용자를 무시하고 설치된 솔루션이라고 봐야겠네요. ㅋㅋ

그래서 저는 그놈만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해요. 기능도 그만하면 충분하고, 외관도 그럴싸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이것 저것 풍부한 편입니다만, 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뭔가가 좀 모자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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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