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8.10.27 09:51

어제 apple.com에서 영화 예고편들을 둘러보다가 (영화 볼 시간이 없어서 가끔 그렇게 예고편 보는 걸로 대신하곤 합니다) JCVD라는 장 끌로드 반담의 신작 소식을 접했습니다. JCVD는 그의 이름 영문 표기의 약자죠.

보통 액션 배우들은 나이를 먹으면 퇴물이 됩니다. 물론 세월에 온몸으로 맞서는 스타일의 배우도 있고 (실베스타 스탤론) 아예 전업을 하는 배우도 있습니다 (아놀드 슈왈츠네거). 하지만 대부분의 액션 배우들은 나이를 먹으면 퇴물이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마 스티븐 시걸일 겁니다. [형사 니코]나 [복수무정]에 출연했을때 그는 꽤 참신했죠. 간결한 액션에, 총을 잡는 스타일도 다른 배우들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 배우의 전성기는 [언더시즈], [언디시즈 2], [글리머맨]으로 끝났습니다. 그 뒤로는 나잇살을 옷으로도 감출 수 없었고, 출연작의 수준도 형편없어졌죠.

장 끌로드 반담의 필모그래피에도 스티븐 시걸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가 화려한 돌려차기로 헐리우드 스크린에 등장하던 그 시절, 비록 영어를 잘 못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분명히 차세대 액션 히어로였습니다. 외모도 꽤 괜찮았죠. 하지만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수준은 그가 그 이후 쌓은 지명도에 비하면 보잘것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 국내 팬들에게 기억될만한 것은 [유니버설 솔져], [하드 타겟], [타임 캅]이 전부인것 같기도 합니다.

그랬던 그도, 1995년에 한 번의 기회를 잡습니다. 당시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폐소공포증에 사로잡혀있었는데요([다이하드] 시리즈, [언더시즈] 시리즈 등등), 그 시류의 틈을 타 제작된 [써든 데쓰]에 출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무대는 아이스 하키 경기장이었고, 감독은 피터 하이암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품질은 꽤 괜찮았어요. 군데 군데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건 [다이하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차피 한 명의 주인공이 사건을 통째로 해결한다는 영웅주의적 플롯에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런 점을 접어줄 수 있다면, 분명 재미있게 볼만한 킬링 타임 무비였죠.

하지만 그 영화 이후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시 보잘것 없어지고 맙니다. 잠시 중국 감독들의 헐리우드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다가([더블 팀], [넉 오프] 등등) 그 뒤로는 완전 내리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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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헐리우드의 거물들은 나이를 먹으면 몇 가지 전략으로 세월과 타협합니다. 연기파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변형시켜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만, 액션 배우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품성을 팔아먹고 살아온 사람들이거든요.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같은 바람직한 전례가 있긴 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이를 먹으면서 연출 쪽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선회했고, 그러면서 자신이 쌓아온 헐리우드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를 다시 탐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걸작이 [용서받지 못한 자]였죠. 그 영화에서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젊었을때 연기했던 서부 액션 활극 스타 이미지와 완전히 결별하고, 그가 연기했던 영웅들이 실제로는 아주 보잘것 없고, 쓰레기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물론, 이런 전략은 아무나 취할 수 있는 것은 못됩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되니까 가능했던 측면도 있죠.

JCVD에서 주목할 점은,  장 끌로드 반담도 그런 시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본인이 연출한 것은 아니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죠. 이 영화에서 장 끌로드 반담은 '자기 자신'을 연기합니다. 나이를 먹어서 액션 씬을 '한번에 찍기에 힘들어진, '자연인' 장 끌로드 반담을 연기한 것이죠. 물론 중반 즈음에서 플롯이 비현실 쪽으로 뒤틀리긴 합니다만...

그런 그의 시도가 잘 멱혔는지,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여러모로 호의적입니다. IMDB 사용자 평점은 7.8에 달합니다. 전무후무한 걸작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만, 아마 평점만 놓고 보면 그가 출연했던 어떤 영화보다도 높을 겁니다. 영화잡지에 실린 평론가의 평들도 다 이 영화가 '그가 연기했던 고만 고만한 영화들에서의 성취를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좋은 평도 실로 오랫만에 만나볼 수 있는 것 같구요.

물론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우니 DVD 대여점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저는 그 마저도 챙겨 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가끔 이런 소식을 들으면 반갑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모든 직업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어서, 누군가 '꽉 막혀버린 자신의 경력'에 돌파구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덩달아 즐겁거든요.

내친김에 감독에도 도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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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