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5.09.10 14:27

23일이면 한국땅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서 일하기 위해서다. 출근이 10월 첫 주 부터니,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잠이 올 리가 없어서, 당연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차 적응은 잘 될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


내가 9개월 전에 처음으로 14년 일한 대전의 직장을 때려칠 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 좋은 직장을 왜 때려치느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이들어 내 인생을 너무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판교에서 일한 9개월 동안 나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 내가 14년을 보냈던 직장이 인생과 일의 균형을 찾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직장이라는 것, (2) 어떻게 하더라도 후회는 하게 되어 있다는 것, (3) 사기업에서의 모든 결정은 결국 다 윗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 (4) 내 인생에 대해서는 최대한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으며, (5) 서울은 절대로 아이를 키우기에 적당한 곳이 못 된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44살에 미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나? 그런데 사실 그건 또 아니다. 경험삼아 본 시험에 붙었고, 좋은 조건에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는게 전부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몇 가지 지긋지긋한 현실들로부터 잠시 떠나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그런데 정말로 그게 전부 다 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냥, 딱히 꼬집어 말할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없는 것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예전 같았으면 무서워서라도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런 변화에도 비교적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담력이 늘었나? 아니다. 그냥 무뎌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러가지로 예전보다 훨씬 더 무덤덤해졌다. 1년전과 비교해보면, 이제 나는 무슨 거창한 목표 같은 것도 세우지 않으며, 사명감 같은 것도 없다. 그런 것들을 갖고 살면 인생이 너무 피곤하다. 그냥 하루 하루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 정도나 제대로 고민하면서 사는 게 바람직하다. 그 이상을 내다보기엔 식견도 짧고, 감당할 능력도 없다. 열심히는 살되, 무언가가 되려고 너무 안달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왜 잠을 못 이루느냐고? 판교에서 보낸 9개월의 후유증 덕분이랄까... 새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같은 짓을 '영어로'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운 것이다. 오직 그것 뿐이다. 뉴욕 타임즈에 아마존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이 잔뜩 실렸던데, 사실 그런 이야기들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에도 그 만큼 악평을 받을 만한 기업은 차고도 널렸다. 회의 시간에 까이고 우는 개발자 이야기도 나오던데, 대한민국에서도 회의 시간에 임원 눈에 거슬리면 쌍욕 듣는다.


그냥 잘 적응하고 싶다. 잘 적응해서, 향수병에도 걸리지 않고, 미국까지 건너간 사실을 후회하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판교에서 보낸 시간 동안은, '내가 이런 걸 하려고 14년 직장을 때려쳤나'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덕에 잔뜩 열이 받아 있었고, 덕분에 '이런 걸'이라고 폄하했던 일들도 제대로 못 해 냈다. 이번엔 아마 좀 다를 것이다. 계약서에 싸인하는 순간, 내 기존 경력은 전부 쓰레기통에 처 박아 버렸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기술 언저리에서 박사학위도 받았고, 당분간은 그 주변을 기웃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런 일들을 못 하게 되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내 자신이라는 것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다른 아무것도 못 보게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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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도전이 항상 성공할 수 없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니 새로운 도전은 성공하지 않을까요.?.?
    시애틀에는 꼭 놀러가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5.09.10 19: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5.09.10 22: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적응 잘하시고 후회없는 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2015.09.10 22: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잘 가라 친구.

    2015.09.11 00: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우연히 블로글에 들어와 이 글을 봅니다. 저와 비슷한 40대 중반이라 특히 응원합니다. 저도 비록 국내이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중이라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충분히 이해하고 저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응원합니다.

    2015.09.11 13: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비밀댓글입니다

    2015.09.12 01:06 [ ADDR : EDIT/ DEL : REPLY ]
  7. 말씀하신 것처럼 어디에서도 후회라는 감정은 따라다닐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실 선택이시길 빕니다.^^ 멋진 미국 생활 되세요~

    2015.09.12 14: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신진호

    판교에서 응원하겠습니다!!
    미국가시면 아마존 적응기도 올려주세요 ㅎㅎ

    2015.09.13 16: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비밀댓글입니다

    2015.09.15 13:48 [ ADDR : EDIT/ DEL : REPLY ]
    • 이런 폭퐁질문받기 전에 퇴사하길잘했군요 ㅎㅎㅎㅎ
      농담이구요.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항상 좋은 결과 있으시길 빌께요~

      2015.09.13 17:50 신고 [ ADDR : EDIT/ DEL ]
  10. 41살 회사가 매각되는 중인 늙은개발자입니다 응원합니다

    2015.09.15 19: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이상준

    병준, 모든 게 잘될거야!!

    2015.09.21 16: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비밀댓글입니다

    2015.09.22 14:10 [ ADDR : EDIT/ DEL : REPLY ]
    • 일단 한국이건 어디건 들어가기면 하면 회사 내에서 이동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고 하더군요.

      2015.09.24 13:56 신고 [ ADDR : EDIT/ DEL ]
  13. 비슷한 연배라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저 역시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화이팅~~ ^^

    2015.10.01 08: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비밀댓글입니다

    2015.12.27 01:31 [ ADDR : EDIT/ DEL : REPLY ]
  15. 수석님~ 화이팅입니다.^_^

    2015.12.27 12: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저랑 같은 생각으로 사시는것 같습니다. 괜히 반가워서 댓글 달고 가요! 저도 1월에 실리콘 밸리로 넘어가는데 두근두근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2015.12.28 15: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3.12.15 18:23

이 바닥에서 일을 하다보면 어떤 이유에서건 직장을 옮길 일이 한 번 이상은 생깁니다. 이 바닥에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아무래도 다른 부류의 직장 보다는 덜 하게 마련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직장을 선택하고 옮겨야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1. 왜 옮기는 지를 분명히 하라. 


왜 옮기는 지가 분명해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적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직장을 옮깁니다. 더 높은 연봉을 찾아 옮기기도 하고, 집 가까운 직장을 찾아 옮기기도 하고, 더 나은 근무환경을 꿈꾸며 새 직장을 찾기도 합니다. 왜 옮기는 지가 분명하면 새 직장을 고르는 기준이 명확해지니까 좋습니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가 분명한 사람일 수록 '왜 옮기는 지'도 비교적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왜 옮기는 지' 도무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면, 개발자로서의 인생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옮기고자 하는 이유를 부정적인 단어들로 채우지 말라는 겁니다. '이 회사가 싫어서', '이 회사가 너무 따분해서', '이 회사가 너무 배울 것이 없어서' 같은 이유들을 생각했다면, 다른 단어들로 바꿔 보세요. '더 많은 배움을 찾아서', '더 즐거운 근무 환경을 찾아서' 이런 문장으로 바꿔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이 배우려면' 또는 '더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무엇을 추가해야 할 지가 명확해 집니다. 그러면, 지금 회사에서 왜 많이 배우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즐겁지 못했는지가 분명해지죠. 그러고 나면, '정말로 옮기는 것이 능사인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쉬워질 겁니다. 


2.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라.


기준이 섰다면, 거기 부합하는 다양한 회사들을 후보로 골라보세요. 자신이 선택한 회사가 있다면 후보 중 하나로 포함시키세요. 그리고 그 회사들에 대한 의견들을 들어보세요. 의견들을 듣는 단계에서는 가급적 자기 의견은 내세우지 마시고, 일단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본 다음에 정리하고, 그 다음에 자기 생각을 추가해 넣으세요.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다양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던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수도 있고, 무시했던 회사가 현재 탄탄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건실한 회사임을 발견하고 경악하게 될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중에 '저 회사로 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회사를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정입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도록 합시다. 옮긴 회사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3. 정말로 옮겨야 하는 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라. 


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 또는 재미가 없어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일이 힘들게 느껴지거나, 재미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직장 생활이 따분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적절한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그 동기라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 만들어질 때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부적인 동기를 스스로 창조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직장에 가더라도 따분함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부적인 동기가 뚜렷한 사람은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1) '개선'에 대한 열망이 높다

(2) '소통'에 대한 열망이 높다

(3) 본인도 모르는 '리더십'이 강하다 


개선하려는 욕구는 소통을 유발하고, 그렇게 이뤄지는 소통은 다른 사람에게 모종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내적 동기는 과연 충분한 수준이었나요? 그리고 그런 내적 동기를 통해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없었나요? 


4. 옮기려는 회사에 적합한 자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전직에 적합한 자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하다는 겸손한 결론을 내렸다면, 그 자질을 채우기 위해 짧은 시간이나마 반성하고 노력해 봅시다. 새로운 직장에서도 여러분은 어떤 팀의 일원일 것입니다. 팀의 일원이 되어 기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잘 추스린 다음에 옮깁시다. 


직장을 옮길 때는, 가급적 아집이나 고집, 편견 따위는 다 내려놓은 다음에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여러분이 갖춰야 할 최선의 덕목은 겸손입니다. 자신감은 어디까지나 그 다음이죠. 그렇게 믿고 있어야 새 직장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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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