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12.30 10:29

앞선 글에서 다단계 하청 업체들이 왜 생기는지 간략하게 짚어봤는데요. 물론 100%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단계 하청업체 가운데는 아예 그 시장을 보고 만들어지는 업체들도 있습니다. 


http://jpub.tistory.com/334



SEE ALSO: 다단계 하청구조는 왜 생기나? (2)

SEE ALSO: 다단계 하청구조는 왜 생기나? (1)


어쨌든 다단계 하청업체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이 업체들에게 일감을 주는 다른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 시장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마 그 원인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용역 단가가 낮기 때문입니다. 용역 단가가 낮으니까 직접 개발하는 것 보다 용역을 주는 것이 훨씬 쌉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역 단가가 낮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이야기했습니다. (개발자 등급제, 개발자 수급구조 등등) 


그런데 이렇게 용역 단가가 계속 낮게 유지되면, 전체적으로 봐서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에 뛰어드는 소위 얼치기(?) 창업자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개발은 용역주면 되니까 그 편이 저렴하죠.) 이런 창업자들은 투자 받고 서비스 런칭한 다음에 ㅈ망하고 나면 바로 초급 개발자들을 잔뜩 뽑은 다음에 하도급 업체로 변신합니다. 그러니 하도급 시장은 더 커지죠. 시장이 이렇게 커지면 커질수록, 하도급 업체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용역 단가를 더 낮춥니다. 용역 단가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낮아지면.... 결국 SW의 품질은 개판이 될 수 밖에 없죠. 


두 번째는, 바로 '다단계'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고급 개발자를 보유한 업체 B가 A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합니다. 이 업체 B는 중급 개발자들로 구성된 업체 C에게 하도급을 줍니다. 이 업체 C는 초급 개발자들로 구성된 업체 D에게 하도급을 줍니다. 중간에 얼마를 먹을 수 있는지가 아주 명확하기 때문에, 다단계의 유혹을 피할래가 피할수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B 입장에서는 A 에게서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약속한 사항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C를 쥐어짜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업체 B는 A같은 업체들을 아주 많이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제한된 인력으로요) C같은 업체도 아주 많이 거느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 다단계의 맨 아래쪽에 있는 업체가 이 다단계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있느냐는건데요. 다단계의 속성상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는 업체가 꼬장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나마 받아먹고 있던 일감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죠) 성공적으로 솔루션 업체로 변신하지 않는 한, 가능성은 굉장히 많이 떨어지죠. 게다가 하도급 일감들을 오래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솔루션 업체로서의 변신'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개발자들 가운데는 이런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프리렌서로 전업하기도 합니다. (중급 이상의 개발자 분들이 특히 이렇습니다. 이런 프리렌서 개발자분들이 어떻게 일거리를 수주하는지는 네이버 '외주까페' 같은 곳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프리렌서 개발자들이 모여 금융권 전산시스템을 고도화하기도 한다는 것은, 개발할 사람에게도 그렇고 최종 소비자에게도 그렇고, 다소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스템 개발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께 누가 될 수도 있어서, 더 이상의 말은 아끼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1) 등급제는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다

(2) 용역 단가가 더 낮아지지 않게 할 방법이 필요하다 


등급제는 폐지해버리면 간단하겠습니다만, 용역 단가가 더 낮아지지 않도록 하려면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접을 수가 없어서 하도급 업체로 변신하는 회사들이 나오지 않도록, 투자 요건은 보다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요. 하도급 생활을 오래 한 업체들이 스스로 '솔루션 업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용역 시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죠. 용역은 사실 '남의 솔루션'을 '내 몸을 대서' 대신 만들어 주는 행위입니다. 그 시장이 줄어들려면 자기 솔루션을 보유한 업체들이 많이 생겨야만 하죠. 


그리고 사실, 그런 '솔루션' 업체들이 활성화 되려면, 일단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시장성이 있는 행위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뭔가 조그만 회사가 그럴듯한 솔루션을 만든 것을 발견하면 그 회사를 제값주고 인수하기 보다는 비슷한 솔루션을 용역주고 개발해서 출시한 뒤 망하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구사해 왔기 때문에 (묵념) 솔루션 활성화 보다는 용역 활성화에 더 기여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죠. 해외처럼 솔루션 업체의 창업이 활성화되려면 (그야말로 기술창업이죠) 대기업도 생각을 좀 바꾸는 것이 옳습니다. 대기업이 나서서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가 잘 된 것으로 판단되면 M&A를 하던지 회사를 키우던지 하는 방식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다단계 하청구조는 끊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등급제나 '개발자 10만 양병' 같은 삽질성 정책은 좀 그만 내놓고, 좀 더 그럴듯한, 그러니까 실제로 하도급 업체를 뛰어다니며 만나본 냄새가 좀 나는 정책을 내놓도록 애쓰는 것이 좋겠어요. 


이 글은 수시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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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Yup

    굉장히 좋은글인거 같은데 답글이 없네요 !

    넓은 안목과 깊은 지적 잘 보았습니다!

    2014.07.14 13: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윌슨

    정말 좋은 분석입니다.
    읽고나니 큰 그림이 잡히네요.
    감사합니다~

    2014.12.10 14: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흠흠

    잘못된 정책이나 누군가의 의지라고 하기엔 시장이 단순하지 않죠. 현실적으로 한국은 SI 위주로 IT 산업이 형성되어 있어 초급 개발자의 수요가 엄청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위 말씀하신 '개미지옥' 레벨에 있는 개발자들이 많은 것이고, 또한 진입장벽도 다른 기술직군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그러니 볼멘소리도 많을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용역단가에 대한 문제는.. 인건비를 내리지 못하게 막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싼 값에 일을 하려고 하는 초급자들이 있는 한 바뀌지는 않을겁니다.

    2016.02.19 10: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