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4.01.07 09:41

개발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습니다. 직업상 그래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책만 보다 보면 지칠 때가 있습니다. 개발자도 사람인데 항상 딱딱한 프로그래밍 관련서만 볼 수 있나요. 그래서 오늘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들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들은 저에게 참 많은 자극을 주었던 책들이기도 합니다. 


1. 아웃라이어 (김영사) 


말콤 글래드웰의 역작 "아웃라이어"는 왜 어떤 사람은 평범하게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탁월한 인생을 사는지를 알려줍니다. 그것도 풍부한 예제와 함께요. 이 책은 일만시간의 법칙, 그러니까 누구든 10,000시간 동안 의도적인 수련(deliberate practice)를 거듭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그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과 출신 대학 간에는 유의미한 통계적 관련성이 없다던가, 어린 아이들을 상대평가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던가, 전문성에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팩터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런 사례죠. 


그러나 역시 우리같이 전문가로서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겠어요. 인생을 조금씩이라도 개선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대략 오년쯤의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메시지가 어디 있겠어요?


SEE ALSO: 10,000시간의 법칙 

SEE ALSO: 10,000시간의 법칙 (2)


2.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김영사)


갑자기 웬 이소룡 타령이냐구요? 그러게 말이죠. (풉)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소룡은 정당히 대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무술인입니다. 심지어 개발자에게까지 말이죠. 글래드웰의 기준으로 보면, 이소룡이야 말로 '아웃라이어'죠. 그의 인생은 온전히 무자비할 정도로 모든 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바쳐져 있습니다. 이런 인물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주변에 그런 노력으로 모든 것을 조금씩이라도 바꾸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SEE ALSO: 달인, 이소룡


3. 에릭 클랩튼: 음악으로 굴곡진 삶을 관통한 뮤지션의 자서전 (마음산책) 


에릭 클랩튼의 삶은 딱 한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음악이죠. 다소 예의없이 이야기하자면, 이 거장의 인생 가운데 중반부는 음악 말고는 완전히 개판이었어요. 그러나 그 인생이 후반부에 극적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던 바로 그 음악 덕분입니다. 이 자서전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대목을 여러 군데 발견할 수 있는데요. 특히 그가 처음에 기타 연습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보면, 재미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인 연습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이에요. 개발자 주변에도 이렇게 끔찍할정도로 지겹게 반복되는 무언가가 널려 있습니다. 그런 지루함을 인생을 바꿀 자극제로 삼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SEE ALSO: 프로그래머를 위한 시간 관리 법칙 [1] [2] [3] [4] [5] [6] [7] [8]


4. CODE 코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숨어있는 언어 (인사이트)


윈도 진영의 Guru 찰스 펫졸드가 저술한 이 책은, 프로그래머라면 한 번은 보고 넘어가야할 탁월한 교양서입니다. 아마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룬 책 가운데, 이 책처럼 쉽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도 드물 거예요.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코드'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이야기해주고, 그 코드들이 어떤 수학적 근거 위에 탄생했으며, 어떻게 컴퓨터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 과정이 전혀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적성은 아마 컴퓨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응?)


5.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더스북)


이 책은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이 사용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사용자에게 유리한 선택을 불편하지 않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 책이 기술하는 영역은 개발자가 관심있어하는 영역과는 좀 다릅니다만, 우리가 하려는 일이 결국 세상에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이고보면, 어떻게든 사용자에게 좋은 일을 해 보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 처럼, 사용자가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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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좋은 정보 잘 얻어 갑니다^^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2014.01.07 09: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마음에 치유와 여유를 가지는 것이 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Code 정말 좋은 책이죠 ^^
    한편으로 자기 개발서에 실망도 많이 했는데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을 망친다. "
    라는 글에 심하게 공감하기 때문에 심취만 안하면 될 듯 합니다. ^^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2014.01.07 10: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09.04.02 11:22
IBM 디벨로퍼웍스에 김창준씨의 새 글이 "당신은 몇년 차?"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다. 전체적으로 좋은 글이니 개발자로서 걸어야 하는 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 둘 것을 추천한다.

다만, 다음과 같은 예는 아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1만 시간 법칙이 유행이다. 국내외에 여러 책에서 그 법칙을 언급하고 있다(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야기하는 오해에 대해 내가 블로그에 쓴 「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오해」를 참고하라).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설명되고 있다.

자신이 IT 분야 종사자라면 그 법칙을 듣고 대부분 어림추산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 내 경력이 6년이고, 야근도 좀 해주고 했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오호, 1만 시간 넘네. 아싸.’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우리는 하루 세 번 3분씩 이를 닦는다. 대략 다섯 살부터 닦았을 것이고 죽기 전까지 닦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닦는 경력과 실력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이 육칠십쯤 되면 도사 수준은 못되어도 준전문가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이 들었다고 이 잘 닦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칫솔에 특수 약품을 묻히고 이를 닦은 후에 어느 부위가 닦였는지 안 닦였는지를 확인하면 얼마나 제대로 이를 닦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 실력과 칫솔질 경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 예는 '의도적 수련이 없으면 양치질 전문가가 될 수 없다'를 보이는 예가 아니라, '옆에서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양치질 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다'의 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양치질 실력은 부모가 잔소리를 해주는 나이까지는 나아지다가 그 뒤로는 나아지지 않는다. 일곱살 이후가 되면 양치질은 거의 혼자 해야 하는 활동이고, 결정적으로 양치질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동기'가 없다.

전문가를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 동기
  • 의지
  • 소통
  • 시간

나의 지도교수는 지금 39세이다. 수영장에 아침 여섯시 부터 다니기 시작한지 거의 십년 가까이 되었다. 보통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고 나면 강사로부터 강습을 듣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분은 계속 강사의 강습을 들으면서 본인의 자세를 교정하고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는다. 덕분에 얼마 전에는 인명구조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수영에 관해서라면, 거의 '준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수영을 잘 하고 싶다는 동기가 있었고, 강사의 조언을 듣겠다는 자세가 있었으며, 매일 아침 수영장에 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덕분에 적절한 수련을 쌓아 준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의도적인 수련'이라는 것은 소통(communication)과 동기(motivation), 그리고 의지(will)의 합작품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잘 갖추고 10,000시간을 보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교육받은 내용을 일에 적용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 의지를 뒷받침해주는 동기가 있으면 충분하다. (10,000시간이 정확한 수치이냐 아니냐는 따지지 말자.)

김창준씨 스타일로 '의도적인 수련'을 강조하는 것은, '전문가가 못 되는 것은 다 네 탓'이라는 식으로 들릴 소지가 있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통해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의도적인 수련을 해도 혼자서 삽질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수 있다. (단, 김창준씨 글을 찾아 읽을 정도의 성의가 있는 사람이면 '소통'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소통을 막는 장애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아집
  • 편견
  • 환경

아집/편견이야 잘 어울리는 한쌍이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발자들은 아마 자신이 일하는 환경의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책 읽을 시간도 안주는 회사' '매일 야근만 시키는 회사'같은 투덜거림은 많은 개발자들이 환경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쨌든 이런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되기는 힘들고, 소소한 '자신만의' 개선에 만족하다가 그칠 가능성이 높다. (XP는 소통의 문제를 Pair Programming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부분을 다 해결하고 10,000시간을 보냈다고 하자. 그러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모두가 세계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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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 '의도적 수련이 없으면 양치질 전문가가 될 수 없다'를 보이는 예가 아니라

    제가 양치질 예를 든 것은, 그냥 어떤 작업에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해서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지 않는 비근한 예를 들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빨이 많이 망가지게 되어서 의사가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도 이빨 닦는 퍼포먼스가 개선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동기나 의지가 생겨도 말이죠. 적절한 피드백도 받고 자신의 약점을 파악해서 그 부분을 상당 시간 연습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의도적 수련"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이런 개별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묶어서 쉽게 정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그래서 의도적 수련이라는 통합적 개념이 유용한 것이죠.

    참고로 전문성 연구자들 중에는 의도적 수련이 nature 대 nurture의 논쟁에서 nurture 쪽에 무게중심을 옮겼지만, 도대체 왜 그런 동기가 흥미를 갖고 수련을 하는지, 그 부분은 nature로 봐야하지 않겠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건 의지나 동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의도적 수련을 잘 하지 않겠죠.

    소통도 의도적 수련에서 중요시하는 "피드백"의 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그 행동에 대해 피드백(선생님이 주건 자기가 캣치하건)이 제대로 없으면 효과적인 의도적 수련으로 볼 수 없거든요.

    2009.04.02 11: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동기나 의지가 생긴다면 연습은 뒤따라 올 것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연습하지 않는다면 의지라는 것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그런 사람은 개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의도적 수련이 유용한 통합적 개념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련'의 의미가 너무 좁아지는 것은 경계하고 싶습니다.

      전문성 연구자들의 무게중심이 nurture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반인의 경우, 누군가가 '수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수련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추상적인 명제가 실질적인 행위로 이어지려면,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련'이라는 행위가 필요로 하는 '피드백'이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경계하고 싶은 것입니다.

      뭐 어쨌든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비슷합니다만^^

      2009.04.02 13:16 신고 [ ADDR : EDIT/ DEL ]

Thoughts2009.03.27 16:37
자주 가는 블로그 중 하나인 http://agile.egloos.com  에 가 보니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언급한 10,000시간의 법칙에 대한 글이 몇개 올라와 있더군요.

저는 대체로 10,000시간의 법칙 그 자체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전 글에서 박사과정 학생이 5년을 제대로 채우면 그게 9,000시간쯤 될거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한편으론 '5년'이라는 시간도 '저절로 정해진 것은 아닐거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http://agile.egloos.com/4834009 에 보면 이런 언급이 나옵니다.

원래 연구에서는 시간 사용을 일, 놀이, 수련으로 나누었을 때 그 중 오로지 수련 시간의 누적만이 실제 퍼포먼스와 관련이 있더라는 발견을 했습니다.

따라서 개발자가 하루에 몇 시간 몰두해 일하냐로 따지지 말고, 하루에 몇 시간 오로지 수련(deliberate practice 특별히 자신의 기량을 높히기 위해 하는 수련 -- 자신이 이미 잘하는 걸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한 수련을 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쓰느냐로 따져야 합니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넋놓고 들으면 '일과 전문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절망적인 코멘트로 읽힐 가능성이 높은데, (설사 그런 뜻으로 말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들으면 곤란합니다.

예를 들어 체스 선수 연구에서 밝혀진 것은 이 선수가 토너먼트를 몇 시간 했냐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실력에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대신 자기가 혼자서 기보를 연구하고 연습하고 한 것이 유의미 했습니다.

이 말도 그냥 말 그대로 들으면 '일과 전문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표현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은데, 역시 (설사 그런 뜻으로 말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읽으면 곤란합니다. 일과 놀이, 수련 사이에는 그렇게 딱 떨어지는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왜 그런가요? 체스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집에와서 기보를 연구하고 연습하는 행동을 안할 리가 없거든요. (취미삼아 바둑을 둘 뿐인 제 아버지도 집에 오면 연구하십니다. ㅋㅋ) 하지만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토너먼트에 나가면 안됩니다. 그리고 체스를 직업으로 삼는 선수가 되어서도 곤란하죠.

물론 인용된 '체스 선수에 관한 연구'와 같은 연구를 하려면 비교 데이터가 있어야 하니까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토너먼트에 나가 게임만 할 집단'과 '게임하고 와서는 연구도 하는 사람의 집단'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나눌 수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하면 누가 나중에 실력이 더 좋아질지는 뻔히 알수 있지 않겠어요? 체스라는 게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실력을 판가름하는 상대적인 게임인데, 토너먼트만 한 사람의 실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이런거 알아낼려고 연구했다는 사람도 참...

사람은 일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부족한 부분을 개선합니다. 더 잘 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배우고 공부하죠. (이런 욕구가 없는 사람은 논외로 합시다) 그런 개선이 없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요. (요즘은 기계 조차도 개선하긴 합니다.) 일을 인간답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개선합니다.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이 혹은 더 잘 하기 위해서. 캐스트 어웨이에서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개선하는 경우도 있겠죠. 일이 없다면 개선할 거리도 없으므로, 일과 수련을 분리하는 것은 따라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시간을 따로 따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구요. (따로 셈할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러면 벤처에서 10,000시간을 일한 사람이 '왜 나는 전문가가 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그 사람이 '수련을 덜 해서'가 아니에요. '엉뚱한 부분'을 계속 수련하고 개선한 나머지 엉뚱한 부분에서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타이핑 전문가라도 되었을 겁니다.) 벤처에서 삽질 잘 하는 방법'을 5년동안 익혔다고 세상 사람들이 'SW 개발 전문가'로 불러주진 않아요. 세상사람들이 자신을 '전문가'로 불러주길 바란다면 그에 준하는 지식과 스킬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지식을 갖추어야 하느냐'는 것은 대체 어디서 알아내야 하나요? 그건 그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로부터 알아내야 합니다. 가령 박사과정 학생들은 연구자 커뮤니티에 속해있고, 그 사람들로부터 계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죠. 교수, 논문 리뷰어 등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습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무슨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그들로부터 배우게 되죠[각주: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 만 시간 이상을 쏟아부었는데도 전문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듣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처럼 수영장에서 제대로 된 지도 한번 받지 않고 혼자 막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10,000 시간을 수영장 락스물에 갖다 푼다고 해서 전문가 소리를 들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겠어요?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올바른 수련'이 이루어지려면 한 개인이 위치한 사회적 맥락, 좀 더 좁혀서 이야기하자면 그 개인이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특정한 영역을 커버하는 '인적 네트워크'라는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수련을 하지만 (연탄을 던지고 받는 일을 하는 사람 조차도) 그 사람을 전문가의 길로 올바르게 인도할 '제대로 된 수련'을 하려면, 아무래도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죠.

교육이 중요한건 그래서입니다.

PS. 비슷한 취지의 글이 있어서 하나 소개... http://kr.blog.yahoo.com/hee6906/614


  1. 커뮤니티 활동을 잘 하면 '전문가'라는 평판이 덤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가령 '아웃라이어' 책에도 나오는 오펜하이머 이야기가 좋은 예인데, 오펜하이머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적 네트워크 구성의 달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 활동의 달인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죠. '평판'이란 것은 이런 데서 나옵니다. 책에 보면 바로 이 '평판'을 얻는 데 실패하고 인생을 촌구석에서 낭비하는 찌질한 천재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선수의 잘못은 그가 속했던 커뮤니티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일원으로 활동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는 평생 그 굴레에 갇혀 사는 것이죠. 그러니 '전문가'인지 아닌지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거에요. 몰라서 그렇지 우리 주위에도 이런 선수들 꽤 많을겁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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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최근에 해당 책을 다 읽고서 관련글을 적어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있었네요.
    주말에 정리해서 올려야겠습니다.
    10,000시간이라....
    하루에 10시간씩 300일을 3년간 하면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니 그래서 고시를 하는 것인가 봅니다.;;;;

    2009.03.27 18: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걸 어디 음침한 방구석에서 혼자 하게 되면 성공할 가능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2009.03.27 20:48 신고 [ ADDR : EDIT/ DEL ]
  2. dhyi123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수련이라는게 일을 하는 도중에도 하게 되는 것인데, 일을 하는 중에 수련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009.03.29 13:3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공감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헛된 시간을 보낸 일들은 없군요. 다만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을 뿐..
    미국에선 그래서 mentor - apprentice 시스템을 좋아하나봅니다. 누군가가 길을 보여준다면 시간낭비가 줄겠죠.

    2009.03.31 01: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 물론 인용된 '체스 선수에 관한 연구'와 같은 연구를 하려면 비교 데이터가 있어야 하니까 사람들을
    > 두 부류로 나누어 '토너먼트에 나가 게임만 할 집단'과 '게임하고 와서는 연구도 하는 사람의 집단'을
    > 만들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나눌 수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 하면 누가 나중에 실력이 더 좋아질지는 뻔히 알수 있지 않겠어요? 체스라는 게 이기고 지는 것에
    > 따라 실력을 판가름하는 상대적인 게임인데, 토너먼트만 한 사람의 실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 상대적으로 빨리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이런거 알아낼려고 연구했다는 사람도 참...

    직접 논문을 읽어보지 않으신 것 같네요. Neil Charness 등의 논문을 참고하시면 통상 이런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토너먼트에 나가 게임만 할 집단'과 '게임하고 와서는 연구도 하는 사람의 집단'을 나누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전문성 연구에서는 예컨대 체스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예를 들면 Elo Rating System 등에 의해)을 나누고 그 사람들의 여러 특징들을 관찰, 측정한 다음 통계적 분석을 통해 어떤 요소가 실력과 큰 관련이 있는지 찾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경우는 play, work, practice의 구분이 좀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만, 음악이나 운동, 체스 같은 경우는 그 구분이 상당히 뚜렷하고요.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쪽에는 어떻게 일하면서 동시에 수련을 하느냐라는 주제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지요.

    저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하면서 동시에 수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04.02 11: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논문은 감사히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연구 방법을 취하더라도, 그 통계적인 경향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달라지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통계적'이라는 것이 보통 어떤 '경향성'을 알아내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일 텐데, 보통 주변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성향은 대략 엇비슷하거든요. (논문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하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다른 분야나 '일과 놀이, 연습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에 연습하느냐'하는 점입니다.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뚜렷한 동기가 있다면, 일과 연습은 그렇게 쉽게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동시에 수련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결론은 비슷하군요 ㅎㅎ

      이렇게 덧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9.04.02 13:26 신고 [ ADDR : EDIT/ DEL ]
  5. 조혜근

    안녕하세요 대학교에서 전산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동아리 역시 전산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저희 전산동아리 홈페이지에 이 10000시간의 법칙의 글을 퍼 가고 싶네요
    도리어 해이해지기 쉬운 학생의 입장에서 꼭 읽어봐야만 할 글이기에
    저만이 아니라 다른 학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감사히 퍼가도록 하겠습니다.

    2009.07.08 11: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냥 링크 거시면 저한테 허락 안받으셔도 되는데.. ㅎㅎ 김창준씨 리플도 읽어보셔야 하니까 가능하면 링크 걸어주세요. ^^

      2009.07.08 17:4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