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1.03.21 15:56
한국경제에 요즘 재미있는 기획기사가 실리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꽤 수준도 높은 편인데, 그 기획기사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살펴보면 기가 찬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공계생 10만 양병설"이다. 10만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도 궁금하거니와, '일단 많이만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거라고 보는 자세가 참 안이하다.... 고 말하면 아마 그 기사를 적은 분은 이렇게 말씀하리리라. '우수한 인력을 많이 만들자는 뜻이지, 무조건 많이 만들자는 뜻이 아닙니다. 곡해하지 마세요." 그런데 문제는 설사 "우수한 인력을 많이 만들자"는 뜻이었다고 해도, 말이 안되는 주장이란 뜻이다. 아니, 말이 되는 주장이라고 해도 그 의도가 이공계생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음험하다는 뜻이다. 대체 그 근거가 뭐길래 그러냐고?

340만마리의 가축을 희생시킨 구제역 재앙.'인력 의존형'이 아닌 과학기술이 뒷받침된 첨단 방역시스템만 갖췄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자성론이 나온다. 10년간 37건의 구제역 관련 R&D를 진행했지만 가축 전염병 치료제 개발에 그쳤다. 뒤늦게 범 정부 차원의 '구제역 R&D 기획단'을 만들어 기술 개발에 나서기로 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32037061&sid=&nid=106&type=106 이 첫 번째 기사 읽으면 알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이 기사를 드라이브하는 원초적 동력은 다름 아닌 '위기 의식'이다. 이대로 나가다간 '국가의 과학기술 부도사태'를 막을 수 없을 거란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기사란 뜻이다. 과학기술 부도사태가 뭐냐고? 이를테면 이런 거다. 우리가 예전에 과학기술을 열심히 잘 해서 지금 그 덕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기술에 문제가 생겨서 유지보수를 하려고 보니 유지보수를 할 사람이 없는 거다. 그 기술이 국가 과학기술 인프라에 해당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국가는 그 인프라를 유지보수할 수가 없어서 '기술적 부도사태'에 이른다. 이런게 한 국가의 과학기술 부도사태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원자력 사태가 터져서 나라 전체가 간당간당한다. 그런데 이런 저런 기사들을 통해 파악되는 일본 학계의 동향을 보면 아시겠지만, (텔레비전에서도 한번 방영한 적이 있다) 일본의 원자력 관련 인력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공대생의 수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고, 외국 유학을 가는 공대생의 수도 급감하고 있다. 이러다간 일본은 나중에는 원자력 인프라를 스스로 감당 못하게 된다. 원자력 인프라의 기술적 부도 사태가 예견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구제역만 문제가 아니다.

'원전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설계 · 제작 · 시공) 자립도도 95%로 높다. 문제는 핵심 설계코드(머리)와 원자로 냉각순환펌프(심장) 등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연쇄 폭발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관계자는 "노심 용융,냉각계통 및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이상에 대비한 기술 점검은 이뤄진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원자력 분야 연구 · 개발(R&D)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원자력학회에 따르면 2020년까지 1439명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배출하는 원자력 석 · 박사는 한 해 76명뿐이다.


역시 같은 기사에 실린 문장이다. 건설과 운영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들여다 보면 핵심 인력이 없다. 이런 나라가 원전을 열심히 지어놓으면, 나중에 사람 없어서 원자력 인프라 부문에서 부도가 난다. 문제가 생겨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건설과 운영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문구를 보고 있자니, 우리 나라가 잘 하는 것이 '과연 삽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진정 씁쓸하다.

그럼 우리 나라에서도 조만간 이런 저런 부문에서 기술적 부도가 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공계생 아닌 사람이 보기에, 참 답답할 거다. 인터넷이며 원자력이며 핸드폰이며, 이런 저런 IT 맨들의 땀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져 왔는데,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면 그런 인프라가 돌아가질 않는다니, 위기다. 자, 그래서 나온 처방이 이거다. '더 많은 우수 인력을 더 많이 찍어 내자!!!'

택도 없는 소리다. 어떻게 찍어낼 건데? 그리고 댁들이 위기를 느껴서 더 많이 찍어내자고 하면, 누가 찍혀 준대나? 우리가 풀빵이냐 위기만 찾아오면 10만씩 양병하게?

지금 학생들이 이공계로 안가는 건 기본적으로 이공계로 가봐야 '좋은 꼴 보며 살 날이 없으리라'는 비관적 전망 때문이다. 앞으로 이 기획기사가 어디로 갈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IT 외부자적인 입장에서 '그럼 10만 양병하자!'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주장하고 있으면 솔직히 이 나라의 IT 장래는 빤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영삼이 아저씨가 그랬다. 과학기술자 더 많이 만들어 내자고. 그래서 시장에 과학기술자들이 갑자기 널리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가격이 내려갔고, 과학기술자들의 삶은 갑자기 피폐해졌다. 그 뿐 만이 아니다. 많이 찍어내려다보니 과학기술자 개개의 수준은 더 낮아졌다. 대학교에서 Java나 C++만 배우고 현업으로 내몰린 대학생들이 늘어가면서, 코드는 만들 수 있으되 설계는 할 능력이 없는 개발자들이 IT 개발 현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머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부문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는 그 잘못된 양적 성장의 뒷물을 치우고 있다.

나는 솔직히, 과학기술자들의 수는 더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로 줄어들었으면 좋겠냐면, 아주 IT 산업이 죽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그리고 삼성이나 LG같은 그나마 해외에서 먹어주는 기술 기업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 과학기술자로 십년 넘게 구른 '전문가'들의 몸값이 더 높아지고 그래야 롤 모델이 생긴다. 롤 모델이 없는 업계에 어떤 미친 X가 '하얗게 불태워보자'며 뛰어드나?

물론, 그렇게 줄어들어서 사정이 나아지려면 한 가지는 담보되어야 한다. 바로 과학기술자에 대한 교육 수준의 대폭적인 향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도 이처럼 지원자가 줄어들다 보면 점차적으로 나아지리라 본다. 이공계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교수인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 교수님들은 영삼씨가 만든 이상한 정책의 여파에 몇 년, 어쩌면 십수년 더 시달려야 한다. 테뉴어 받으셨으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스스로 훌륭한 교육자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몇 년을 더 고생하셔야 한다는 뜻이다. 등록금 낼 학생수가 점점 줄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자. 그런데 그러다가 교수님들이 '아이고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전부 나자빠지면 어쩐다?

그러니, '십만 양병' 같은 개소리는 하면 안된다는 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있는 교육 인프라의 수준을 더 낫게 만드는 거다. 더 낫게, 더 훌륭하게,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돈을 있는대로 갖다 부어야 한다. 투자를 해야 한다는 거다. 학교나 연구소에 돈을 갖다 부어서, 최소한 '야 연구만 잘해도 돈 많이 벌수 있대' 이런 환상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이공계 학교로, 이공계 연구소로 사람들이 몰린다. 지금 있는 교수님들이 '더 많은 대학원생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고, 지금 있는 연구소들은 '더 많은 정직원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요즘 국책 연구소 보면 신입 직원들은 100% 계약직이다. 박사인데도 그렇다.

어떤 미친새끼가 박사 학위 따도 계약직 밖에는 될 수 없는 분야에 자기 미래를 걸고 싶겠느냐 이거다.

너같으면 하겠냐?

그러니, 부탁인데 한국경제여. 그리고 수많은 일간지와 주간지여. 이 나라의 과학기술 미래가 진정으로 걱정된다면, 이공계 학교와 연구소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더 많은 정직원들이 고용되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써 주시기 부탁드린다. "논문 쏟아지지만 질은 별로" 이런 기사 써봐야 안먹힌다. 그건 우리도 잘 안다. "원천 기술 확보 시급" 이런 기사 써봐야 안먹힌다. 우리도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근데 대체 뭘 보고 질이 별로라는 건데?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일단은 넘어가겠다.

가장 큰 문제는 댁들이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거다.

반면 쏟아붓는 돈은 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9년 민간기업과 공공분야를 포함한 총 연구 · 개발비는 37조9285억원.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3.57%로 이스라엘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계 4위,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또 전년 대비 평균 연구 · 개발비 증가율은 8.3%로 OECD 국가 평균 5.9%를 웃돌며 OECD 국가 중 중국(18.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쏟아붓는 돈이 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치자. 어디에 어떻게 잘 쏟아붓고 있는지 잘 지켜보기 바란다. 그게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갖다 처 붓고 있는데 왜 이공계 석박사들의 고용 안정성은 해마다 안좋아지나? 왜 내 후배들은 전부 계약직인가?

부탁인데, '많이 갖다 부었는데' 잘 안되는 것 같으면, '갖다 부은 방식'이 과연 올바른 건지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그렇게 부었는데도, 아직 우리는 한의사, 변호사 이런 인간들한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기업체들의 역할도 재고해보자. '대학이 산업체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이건 기업체들의 주장이다) 더 좋은 연구과제를 줘서 '요구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해당 과제에 참여한 대학원생에게는 좀 더 나은 채용의 기회를 주고, 성공적으로 연구를 수행한 연구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대학에는 선도적인 연구 과제를 주어 그들이 더 좋은 논문을 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 선도적인 연구 결과가 기업의 필요를 장기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는 비전적 환경도 만들어 내야 한다.

부탁인데, 산업체들은 남 탓좀 그만하고, 정부는 대학이나 연구소를 '다운사이징'의 대상으로 보고 생산라인 효율화하듯 효율화 하겠다는 망상을 버리길 바란다. 연구 행위는 '유연화'해서 개선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가지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은데 나아진 적이 별로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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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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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제가 다 시원합니다~~~ :)

    2011.03.22 10: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멋진 글!

    2011.03.22 14: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지나가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 개X 놈들은 입만 열면 사기질로 공대 출신들 어떻게 하면 이용해 처먹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으니. 그러다 뭐 조금 못하면 MB처럼 우리는 왜 못 만드나는 개소리를 해대고.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내 금괴 내놓으라는 철면피 개소리를 남발하니.

    2011.03.28 01:2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지나가다

    근데... 달라질 가능성이 별로 없죠. 멍청이 문돌이들과 남들 등쳐먹는 놈들이 기득권을 놓으려고 하질 않으니 기대난망입니다. 그래서, 일본도 결국 실패했죠. 기득권 한번 움켜쥔 놈들이 지들 기득권을 이공계에게 풀어야 하는데. 그저 푸는 건 대학 학비 지원이니. 대학 학비지원이 그들이 가진 기득권일까요?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기득권 단 한개도 내놓지 않고 있으니. 결국 한국도 세상의 진리대로 뿌린데로 거두는 길로 갈뿐이죠. 그 와중에 당하는 이공계 출신들만 불쌍하고.

    2011.03.28 01: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