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6.10.01 07:19

시애틀에 온지도 일년이 지났다. 


<screaming>

아니 시발 일년이 지나다니! 벌써 일년이 지나디니! 

</screaming>


시애틀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nonsense>

영어가 안되는 것 말고는 다 비슷하자나? 그래! 개발자가 일하는게 다 거기서 거기지! 아무리 아마존이 빡세다고 해도 한국에서 일했던 것 보다야 낫겠지! 그래 자신감 하나로 밀어 부치는거야! 

</nonsense>


그런 자신감으로 시작했던 아마존 생활은 곧 빈곤한 영어실력에 너덜너덜해지고... (묵념) 


아마 그 시절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소위 시니어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싶다. 시니어 개발자는 주니어 개발자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자리임은 물론, 여러 팀 간에 생기는 개발 이슈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책임도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되어야 조정이고 나발이고 해 보지....  썅 


그러나 미국 생활을 처음 해 본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친절히 모든 것을 이해해주었던 동료 개발자들과 매니저 덕분에  바닥이었던 자신감은 하루 하루 조금씩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나와 direct report 관계에 있는 시니어 매니저였는데, 내가 시스템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프로젝트를 시의 적절하게 계속 찔러주었음은 물론 (거의 전방위로) 내가 부족한 부분을 2주 단위로 계속 지적해주어, 어디를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삽질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가히 아마존 생활에 있어서의 가장 큰 은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그래도 지난 일년을 돌아보면, 직전 직장에 비해 과히 힘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험난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10월~2월:

이 시기에는 거의 여섯시 반 기상 일곱시 출근 여덟시 사무실 도착 일곱시 퇴근의 강(?)행군!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해주겠어! 이런 기상으로 넉달을 버텼다. 그러나 그런 기개에도 불구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대놓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기를 여러번...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시발 집에 가고 싶어(갈 집은 있나)를 되뇌었던 날이 도대체 며칠이었던가.... 그러나 굴하지 않고 모든 이슈를 내 힘으로 해결해 보이겠다는 욕심에, 남들에게 묻는 대신 스스로 삽질하며 밤을 지새우기를 여러날...


3월~6월:

그렇게 삽질한 덕분인지 시니어 개발자 답게 팀내에서 생기는 이런 저런 이슈들에 대해 질문대신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 시애틀의 명물 가랑비가 그치고 황금같은 여름 날씨가 찾아온 덕분에 춥고 배고픈 출퇴근길을 졸업한 시기이기도 하다. 회의시간에 오고가는 이야기를 대략 80%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간 삽질에 공헌한 노고를 치하하는 상도 받았다 (Recognition Award 2016).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괴로움에 치를 떨며 잠못 이루던 시기도 끝나고, 머리만 대면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7월~10월:

무척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던 시기. 어떤 식으로든 모든 팀원을 도와줄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주도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도 생겼고, 마침내는 뭔가를 제안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제안한 프로젝트는 현재 디자인 리뷰 중이다.) 그러나 한국에 있을 때 부터 말썽이던 고관절 수술을 받는 사람에 7월 한달간 퍼포먼스는 바닥이었다...


그래, 그렇게 벌써 일년이 지났다. 


그래도 아직까지 끊임없이 묻는다.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왔으며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에 왔을 때 만 해도 그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오만한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하루 하루 성실하게, 즐거운 일을 해 나가며 버틸 뿐인 것이다...


그래도 시발 on-calld은 정말 버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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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6.10.06 14:22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6.06.26 16:28

시애틀에 와서 빡세게 산지도 어언 9개월이 지났다. 9개월이 지난 지금, 처음 시애틀에 왔을 때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을 꼽는다면 대충 다음과 같다. 


* 더 이상 영어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낯짝이 두꺼워졌다)

*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쪽팔려하지 않는다 (낯짝이 두꺼워졌다) 

* 더 이상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낯짝이 두꺼워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는 이 곳에서 적응 = 눈치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 - - 


시애틀에서 얻은 교훈 #1:


일단 열심히 하면, 상사(매니저)가 아무리 거지같고 성질이 더러워도 대체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열심의 정의가 무엇이냐다. 사람마다 열심의 정의도 다르다. 


똑똑한 개발자는 보통 내 할일을 성심껏 시간내에 완수하기만 하면 열심을 다 한 것 아니냐, 내 책임을 완수한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유로운 조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낙천적인 개발자와 관리자만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미국에 첨 건너와 영어도 어리버리할 것이 분명한 개발자라면 더더욱 그러면 곤란하다. 


계약된 직급이 높다면 더더욱 그러면 곤란하다. 


"쟤는 영어는 어리버리한데 일은 진짜 잘해."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비로소 팀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아니라면 아마 "어디서 저런 친구를 저 직급에 계약했나 몰라." 같은 평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개발자의 자부심이 큰 동네에서는 시기심의 그림자도 짙다. 


한번 동료로 인정받으면 인생이 편해지는 곳이 미국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무자비하게 까이는 곳도 미국이다. 


그러니 영어는 다만 스트레스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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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태연

    BJ, 오랜만.
    글을 읽어보니 웬만큼 적응기간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네.
    하긴 거짐 1년이라는 시간이면 BJ에겐 충분하겠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나도 기쁘고 언제 얼굴이나 한번 볼일 있으려나..

    2016.06.30 10: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이구 오랫만입니다. 형님 이메일주소나 전화번호좀 남겨주세요. 신박사가 제 지메일주소는 알고 있을거에요.

      2016.07.17 13:41 신고 [ ADDR : EDIT/ DEL ]

Thoughts2015.11.23 15:57

미국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케아에서 가구를 산다. 굳이 이케아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가구가 싸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가 한국과 비교해서 싸다고는 하지만 월세 같은 부분은 분명 가당찮을 정도로 비싼 부분도 있고, 서비스 비용은 비싸기가 악명이 높을 정도이기 때문에 (의료비도 그 중 하나) 다들 절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는 곳이 이곳이다. 


이케아의 가구가 저렴한 것은 조립, 배송에 관한 부분을 고객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가구 자체의 품질로 보면 분명 경쟁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런데 그 가구를 힘들게 집으로 실어와 조립을 시작하고 나면... (묵념)


이케아 가구에는 소프트웨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첫 번째는, 매뉴얼을 잘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보고 조립에 착수하면, 부룸을 빼먹거나, 엉뚱한 곳에 꽂거나, 자재를 망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조립에 필요한 모든 것은 매뉴얼에 있고, 제대로 숙지하지 않아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온전히 고객의 책임이다. 그러니 이케아 가구를 조립할 때는 섣불리 조립부터 시작하는 대신,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깊게 완독한 다음에 덤비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대로 개발을 하고 싶으면 관련 문서를 정독해야 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두 번째 비슷한 점은, 덩치가 작은 가구라고 반드시 조립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침대를 조립하기보다 서랍장 조립하기가 더 어렵다. 덩치가 작은 가구라고 해서 매뉴얼이 더 얇지도 않고, 부품이 더 적지도 않다. 침대 하나를 조립하는 부품들은 달랑 비닐봉지 하나에 포장되어 오지만, 서랍장 하나를 포장하는 데 필요한 부품은 비닐봉지 세 개에 포장되어 온다.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을 단순히 그 규모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나 비슷하다. 


세 번째로 비슷한 점은, 드라이버나 뺀찌 등의 기본 연장이 충실하면 작업 속도가 배로 빨라진다는 것이다. 전동 드릴이 있으면 제대로 조립할 가능성이 높지만, 막 드라이버 하나로 덤비면 밤을 샐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대로 된 공구를 갖추면 일이 편해질 뿐 아니라 작업 시간이 단축된다. 제대로 된 기술과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개발에 착수하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이나 비슷하다. 


네 번째로 비슷한 점은, 제대로 표준화된 인터페이스가 있으면, 모든 작업이 예상 가능한 수순을 밟는다는 것이다. 이케아 가구 조립에 쓰이는 공구와 나사는 거의 전부 표준화되어 있고, 이용 방법이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조립을 거듭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숙련도가 올라간다. 잘 정의된 인터페이스를 갖춘 컴포넌트를 통해 개발을 진행하다보면 절로 속도가 올라가는 것이나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비슷한 점은.... 정작 조립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언제나 


'시발 내가 왜 대체 이 밤 중에 이 짓을'


과 유사한 말들을 중얼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립 후 완성된 가구를 바라보는 뿌듯함은, 조립과정의 그 모든 괴로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오늘 밤에도 삽질에 열중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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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6.05.22 20:47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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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8 15:32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11.19 06:11

지난 몇년간 써볼 기회가 없던 언어로 이런 저런 삽질을 하고 있노라면 역시 리팩터링의 백미는 다 만들어진 시스템을 뜯어고칠 때의 희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개, 리팩터링 자체가 과제로 주어지는 모듈의 소스코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로 그런 모듈은 입문서의 소스코드 수준에서 시작했다가, 오류가 없다는 것이 검증되고 나면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밀려오는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커지고, 복잡해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요구사항이 접수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해당 모듈의 구조 자체를 검증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물론 명민한 개발자라면 중간 중간 불합리한 부분을 뜯어고치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런 시도를 포기하는데, 정말로 고칠 수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API를 변경하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API를 고쳐야 하는 일이 벌어지면, 해당 API의 소비자들과 이런 저런 조율을 하느라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피하는 것이다.... "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온 바에 따르면, 그런 이야기는 그저 핑계에 가깝다. API를 건드리지 않고도 상당수의 구조변경은 가능할 뿐 아니라, 하위호환성을 보장하기 위한 패턴을 따르면 신규 API를 도입하는 것 뿐 아니라 기존 사용자를 신규 API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그냥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는 많이 만나보셨을 것이다. 


나는 어느쪽이었냐 하면 주로 후자 스타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구조변경을 미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쩐지 방어적인데다 게으르게 느껴져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덤으로 '니가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는데...'를 입밖에 내는 사람을 만나면, 그런 사람들은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내가 그렇게 방어적인 개발자를 많이 만나고 실망했던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니, 아, 그건 전부 내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격적인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방어적이 되는 것이 사람의 본능. 내가 방어적인 사람을 많이 만났던 건 전부 내가 쓸데없이 공격적이었기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애틀에는 공격적인 개발자는 드물다. 모두들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고, 기꺼이 자기 의견을 나누며, 타인의 실수를 실수가 아니라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마 실패를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는, 바로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시 깨닫는 것은, 미국에 온 것이 내게는 자기개조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공격적이었던 나를 좀 더 겸손하고 차분한 사람으로 바꾸는 자기 개조의 기회.


"리. 요즘 너무 조용한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시발 영어가 안 되어서 닥치고 있는 거거든? 


아, 이렇게 한 일 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공격적인 인간에서 차분하고 과묵하며 겸손한 인간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말이 많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격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게 되기도 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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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지하고 나긋나긋한 듯한 문체 속에 빠져서 글을 읽다가
    꼭 말미 쯤에 터지는 '시X' 같은 욕설에 웃음이 빵터집니다. ㅎㅎ

    2015.11.19 10: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11.14 09:28

시애틀의 겨울은 춥다.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춥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마는, 체감온도는 비슷하면 비슷하지 덜하진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비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계속 비가 내린다. 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우산을 들기도 애매한 부슬비를 맞다보면,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부슬비에 젖어 출퇴근을 하다 보면, 뼛 속 깊이 바람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젊은 사람이야 그렇게 내리는 비를 낭만삼아 맞고 걸어갈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나처럼 사십대 중반의 개발자는 안그래도 안 저린 곳이 없는 마당에 비까지 맞다보면 절로 나이를 푸념하게 되고야 만다. 


"리. 한국의 겨울은 어때?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동료가 묻는다. 시발 여기도 만만찮다 임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들어간다. 


그래도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며 동료들과 박터지는 요구사항 이야기를 하다 보면, 회의실의 열기는 사뭇 훈훈하다. 요구사항 회의가 그렇게 박터지는 이유는, 잘못된 요구사항을 두고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모두들 지극히 신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나처럼 일단 코드부터 저지르고 보는 낙관적인 개발자에게는 그야말로 속터지는 분위기라고 하겠으나, 이해 당사자가 워낙 많을 때는 그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고 보는 것이 프로젝트 관리의 기본인지라, 오히려 속터져하는 나같은 사람이야 말로 욕을 먹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리. 한국에서 했던 프로젝트는 어땠어? 삼성같은 데는 많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동료가 묻는다. 삼성 안다녔다 임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들어간다. 


한국에서 했던 프로젝트와 다른 점을 굳이 한 가지 꼽으라면, 여기서는 한 디파트먼트의 관리자 쯤 되기 전에는, 여러 프로젝트에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니어에게 요구하는 것은 보통, 한 프로젝트에 관계된 여러 부서의 이해 관계를 잘 조율하는 것 정도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관계된 사내 부서가 워낙 많은 것이 보통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고 싶으면, 보통 그 만한 권한을 갖는 자리를 주는 것이 상례다. 그런 자리를 맡길 수 있을 때만 진급시킨다. 진급시킬 수 없어 보이면 그냥 성과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술적인 리더십이 탁월한 사람은 보직과 관계없이 진급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존경'이라는 무형의 보상까지 덤으로 받는다. 


본격적으로 날씨가 구려지는 가운데 코딩과 디버깅이라는 삽질을 하다보니 손가락과 어깨에 시발 힘들어요 라는 신호가 슬슬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코딩과 디버깅을 번갈아 하다보면 열이 받아서 머리부터 슬슬 뜨끈해지는 통에, 시애틀의 겨울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석달 기한으로 받은 일거리의 첫 번째 Phase가 끝나간다. 외벌이라, 미국까지 왔어도 살림이 확 피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 직장을 옮겼을 때와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졸라 열심히 일해서 보너스라도 듬뿍 받아야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 시발 이 일을 빨리 끝내야 인정 받을텐데... 이러고 있는 것이지. 


"리. 요즘 왜 그렇게 자리에서 안 일어나? 일이 그렇게 많아?"


동료가 묻는다. 너처럼 혼자 벌어 혼자 먹는 사람이 내 심정을 어찌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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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글에서 힘듬이 느껴지네요.

    2015.11.16 16: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다 보니 건강 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네요. 제가 다니는 학교 연구실에서도 감기, 장염, 디스크 환자들이 속출하네요.

    2015.11.17 17: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네쯔

    매번 눈팅만 하다가 'X발' 이 많은것을 보고 힘내시라고 한마디 드리고 싶어서 글 남깁니다.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2015.11.20 11: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오하이오공돌이

    오래 전 무슨 이유로 (아마도 프로그래밍 관련 소설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올림푸스 카테고리가 그것이었던가요?) 북마크에 등록해 놓았었습니다. 우연히 북마크 정리하다 방문해 보았는데 올해 미국으로 이주하셨네요. 전 2005년 미국에 가족들과 나온 공돌이(광학분야)입니다. 현재는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근방에 거주중이고요. 미국 처음 나온 곳은 플로리다 올랜도였는데 원치는 않았지만 10여년간에 걸쳐서 이번이 벌써 네번째 장소입니다 (플로리다-뉴욕주-매사추세츠-오하이오) 곳입니다.

    글들을 보면서 처음 미국에 나왔을 때의 막막함과 좌충우돌하던 시기가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저보다는 좋은 곳(시애틀)에 정착하셨으니 (적당히 미국식으로 시골스러우면서도 적당히 한국식의 번잡함도 있는 곳?)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랑 연배도 비슷하시고 (제가 쪼~끔 더 들은 것 같습니다만 ^^) 해서 친구처럼 알고 지내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는 한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편입니다만, 이공계열의 분이시라면 통하는 것도 있을 것 같고 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반갑습니다.

    2015.12.06 22: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반갑습니다.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연락하시고 싶으시다면 byungjoon.lee @ gmail.com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5.12.09 06:25 신고 [ ADDR : EDIT/ DEL ]
  5. 오하이오공돌이

    미국 회사 보너스 짜던데요. 물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요. 지금 세번째 회사(한번은 회사가 다른 더 큰 회사에 머징되어 relocation까지 한 경우 포함해서요)인데 보너스는 한국보다 못하더라고요. (삼성에 다녔었습니다) 다만 base salary는 좀 낫고, 대신 세금은 겁나 많이 떼이고요. 저도 혼자 벌다 보니 항상 버겁더라고요. 요즘은 슬슬 투잡, 쓰리잡 고려중이고요.

    2015.12.07 02: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삼성 안 다녔다 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6.01.09 14: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11.02 15:07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라는 것은 뭘 의미하나?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대충 먹고는 살 수 있으나 결코 넉넉하지는 않는 벌이'


그러니까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 봐야, '뭔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넉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미국에 봐 봐야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질거라고 기대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일단, 월세가 쎄다. 시애틀은 집세가 월 이천불에서 삼천불 사이다. 좋은 학군, 조용한 환경을 쫓아가다보면 월세가 삼천불에 가깝게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보험 등등 각종 제반 비용을 합하면... 답이 나오지 않게 된다. 게다가 자식 구성이 아들 딸 이런 식이라 방을 따로 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이제 3베드 2bath 이런 옵션을 찾아 헤매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출퇴근이 버거워지는 외곽지역으로 슬금슬금 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다운타온에 직장이 있는 사람의 비애랄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래야 그런 옵션이 있는 집을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가 있다. 


교육비도 세다. 공립학교가 좋긴 하지만, 학교 끝나면 딱히 뭘 할 게 없기 때문에 '예체능 활동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삼십분에 얼마, 이런 식이다. 월세가 비싼 동네는 이런 비용도 더 비싸다. 그러니 월세가 비싼 동네에 간다는 것은, 다른 모든 비용이 함께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값이 비싸다. 다운페이(할부금 비용을 낮추기 위해 초기에 한 번에 내는 금액을 의미한다)를 만불을 낸다고 치고, 혼다 미니밴 같은걸 60개월 할부로 구입한다고 치면 한 달에 사백불 넘는 돈을 내야 한다. 한국차도 많이 비싸져서 옵션 붙이다 보면 상황이 다를 바 없다 (...)


세금이 21% 가량 나오고, 여기서도 짤 없이 월급이 나오기도 전에 싸악 긁어간다. (가족 등록이 끝나고 나면 굉장히 많은 부분이 환급되긴 한다.)


의료보험료가 비싸다. 회사가 일정 정도 부담을 해 주긴 하지만, 4인 가족 기준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옵션을 선택하고 나면 한 달에 이백오십육달러 정도 들어가고, 그렇게 보험을 든다고 해도 deductible이라고 부르는 자가부담금 한도 내에서는 자기가 돈을 부담해야 한다. 이 한도가 넘으면 최소 10%, 최대 30%의 의료비만 부담하게 된다. (물론 이런 종류의 보험은 out-of-pocket maximum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그 한도를 넘으면 자기 돈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 돈이 천만원 이상 들어갈 일이 없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 천만원 한도가 찰 때 까지는 자기 돈은 보통 병원비의 30% 정도만 지출된다.) 


이런 저런 비용을 다 지출한다고 치면, 어지간히 벌어도 딱히 넉넉할 건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


그러니 월급쟁이 팔자에 딱히 낭만적인 팔자고침 시나리오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봐야 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그 나라 물가 기준으로 딱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주는 것이 '관례'다. 그런 관례보다 못 주면 '짜다'고 하는 것이고, 그런 관례보다 더 받으면 '후하'다고 하거나, '능력이 좋네'라고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굳이 시애틀까지 와서 직장을 구하는 궁극의 장점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옳은 것인가? 금전적으로만 보면 크게 장점도 없는 것 같구만... 뭐 돌려서 말할 것 없이, 다음의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똑똑한 놈들이 뭘 하는지, 돈 받아가면서 보고 배울 수 있다.'


놀라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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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저는 시애틀 북쪽 Shoreline 에서 Computer Science로 편입준비하고있는 커뮤니티컬리지 학생입니다.
    두번 방문해서 글 읽었을때는 코멘트를 안남겼는데 오늘은 남기고싶네요. 시애틀에서 일하고계시니 반갑네요. 마지막 장점 남기신것이 아직은 현장을 모르는 학생으로서 기대감이 커지네요.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11.05 16: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10.30 14:42

자, 그러면 태평양을 건너온 아시안 프로그래머에게 과연 미국이란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무엇일까? 아마 그렇기만 하다면 이 곳까지 건너온 의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엔지니어에게 좋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 곳의 IT 문화가 신뢰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이라는 불신의 천국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화적 차이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아니 한국이 불신의 천국이라고?' (그럴분들은 아마 없으시겠지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정말 몰랐단 말인가.


여러분이 가령 미국에서 급히 돈을 쓸 일이 생겼는데 돈을 모조리 한국에 있는 은행에 두고 왔다고 치자. 그러면 아마 여러분은 급히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미국으로 돈을 송금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런데 하필 한국에 있을 시절에, '해외 IP로는 이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치자. 해외에서 이 서비스를 해지할 방법이 있나? 없다. 그러니까 어쩌다, 살다가 정말 어쩌다 그런 실수를 하게 되면 여러분은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필이면 태평양을 다 건너고 나서야 그 실수를 깨닫게 되면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상담원과 통화를 하면 아마 '해외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보이스 피싱과 그에 따른 금용 사고를 방지하고자' 같은 고리타분한 일장 연설을 듣게 될 터이고, 해당 서비스를 해지하기 위해서는 영업점에 내방하는 수 밖에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되고야 만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공인 인증서로 '접속'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에 둘이서 서로 전화를 통해 protocol handshaking을 하면, 시간은 좀 오래 걸릴 지라도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런 종류의 방어 시스템은 악의를 가진 사용자에게는 정말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우회할 방법이 널리고 널렸다는 의미에서)정작 골탕을 먹는 것은 선의의 평범한 사용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은 대체 왜 등장하는 것인가? 이런 시스템이 등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객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다. 고객은 일단 잠재적으로 나쁜놈이기 때문에, 일단 '보안'과 관계된 시스템은 어쨌건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분 있을지 모르곘다. 그렇게 후진 시스템은 안쓰면 되는 것 아냐?


문제는 이렇게 후진 시스템을 여러 금융사가 담합이라도 하듯이 똑같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단 소리다. 그 담합을 부추키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 국회, 사법 시스템 등등이다. 이 삼자가 합심해서 법률로 다른 시스템이 등장할 여지를 원천 봉쇄해 놓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해외의 유수 결재 시스템, 은행 법인들이 들어와서 뭘 할 여지가 없다 (PayPal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병신같은 시스템이 법제화될 수 있다는 것은, 단언컨대 정부라고 불리는 조직이 국민을 전혀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병신같은'이라고 부르느냐. 그렇게 오만가지 플러그인과 프로그램으로 칠갑을 해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정작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사고는 그렇게 칠갑을 해 놓은 시스템을 악용한 결과로 생기며, 또 상당수는 그 시스템과 아무 상관이 없는 취약점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 소중한 한 표로 만든 이 민주정부가 나를 못믿는다고?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세뇌된 것이다. 내 역사관이 새빨갛게 물들까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 보라. 자라나는 아이들이 빨갛게 물들까봐 교과서를 바꾼다는 것이다. 기가 차는 일 아닐 수 없다. 정작 아이들의 머리 속에 박히는 것은 오히려, 불신이다. 이 정부는 내 가치관을 믿지 못하고, 게다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주체사상에 물들까봐 걱정한다. 아니 걔들이 머리에 총맞았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의 가치관에 물들게. 


아 물론, 정말로 믿지 못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너무 확신에 차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또 이데올로기 가득한 분탕질을 쳐 놓으면, 다음에 또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각설하고, 이런 '불신'의 메커니즘은 너무 이곳저곳 널리 퍼져 있어서, 직장을 옮길 때도 여지없이 작동한다. '능력을 입증해 보이면 연봉을 올려드리죠. 일단 이 정도만 받으시고...' 여기서는 반대다. '일단 모든 조건을 잘 고려해서 줄 터이니...' 그렇게 잘 해드릴테니 직장을 옮기라고 추파를 던지는 리크루터만 일주일에 두명씩 만나게 되는 도시가 이곳이다. (시애틀로 직장을 옮긴 이후로, 정말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연락을 받고 있다.) 그러니 정말 협상 능력만 좋으면 직장 옮기는 것 만으로도 연봉을 꽤나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무작정 좋을 수는 없다. '쌍방 중 어느쪽이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계약서에 박히게 되기 때문이다. 시애틀 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조건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것은, 일단 나를 믿어주기 때문이다. 믿고 잘 대접해주기 때문이다. 설사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내도, 얼마 동안은 진득히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한국과는 다른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은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확률적으로 낮추기 위해 채용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대신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확실하게 믿어준다. 잘못된 사람일 확률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초기 기대치를 낮춰잡고, 그에 따라 연봉을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짜게 주고, 잘 한다 싶으면 대우를 잘 해 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다 보니, 채용과정이 복잡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요즘 한국 기업의 채용과정도 많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채용 과정만 복잡해진 기업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너무 그렇게 하면 기업가가 느끼는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정말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부담은 상상 외로 크다. 그 부담감을 극복할 수 없거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실 그냥 알아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한국과 비교해서 나은 게 뭘까? 빡센 건 똑같은 것 같구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납득할만한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되면, 아무도 그 사람의 다음 행보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일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벗어나야 하는 일 없이, 자기 선택대로 다음 행보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기 일을 진짜 사랑하는 엔지니어가 '리더로서의 야망이 없는 산 송장' 취급을 받는 것을 나는 꽤 많이 봤다. 그런 취급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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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m

    공감하며 글 남깁니다.
    회사 다니면서 각종 보안 툴이 심각하게 업무 생산성을 저하 시키고 게이트 통과 할때마다 엑스레이에 검문검색을 통과할 때 마다 일단 기본적으로 모든 직원을(임원제외) 도둑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정작 크리티컬한 정보 유출은 임원손을 탈때가 많은데 말이죠..

    2016.11.03 10: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10.28 05:25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나에게는, 프로그래머의 도시다. 비행기에 오를 때 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프로그래머의 도시라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라는 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면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을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리. 한국은 어떤 곳이지?"


이방인으로 시애틀에 온 내게, 가끔 동료들이 묻는다. 영어가 서투른 내가 이 질문에 심오한 답을 해 줄 능력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몇 마디 피상적인 대답으로, 한국이 나에게 어떠했는지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나를 '리'라고 부른다. 


"한국은... 모든 것이 편리한 곳이지."


모든 것이 편리하다는 대답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그런 대답에 이른 내 처지를 뒤돌아보면, 미국의 모든 것은 아직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음료수 하나를 사는 단순한 일을 할 때도 무슨 말을 어떻게 내 뱉어야 할 지 고민해야만 하는 사람에게,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것은, 모든 일이 노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 노동으로 다가오다 보면, 퇴근할 때 쯤에는 녹초가 되게 마련이다. 어떤 날은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피곤해서, 정말 오늘은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직장이고 생업이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통근길에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곳에 왔다. 쉽게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루 하루를 보내다보면, 문득 그들과 차 한잔 하면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눈코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아니니까,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메신저로 인사 한 번 건네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하지만 너무 더디게 나아지는 내 의사소통 능력에 생각이 미치면, 어쩐지 망설여지게 된다. 힘들더라도, 한 마디라도 더 영어로 내 뱉을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시애틀이라는 곳은,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곳은 내게 그런 곳이다.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을 생각해 보면, 차마 지금으로서는 회상하기도 면구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문제건 실제로 겪기 전에는 전부 조금씩은 미화되거나,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마련인 것이다. 닥치기 전에는, 그 문제들이 정말로 어떤 느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아빠, 긴장되지 않아?"


첫 출근을 준비하던 내게 큰 아이가 물었다. 같은 질문을 지금 다시 한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첫 날보다, 지금 훨씬 더 긴장된다고. 매일 매일 출근을 준비하는 매 분 매 초가, 더욱 더 긴장된다고.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뜰 때 마다, 정말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삼주차 되던 때였나, 새로 부임한 매니저가 내게 새로운 일감을 맡겼다. 한국에서 알고 있던 내 직무와는 사뭇 다른 일거리였다. 물론 당황했다. 업무가 달라져서 만은 아니었다.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해 내가 져야만 할 책임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해하지만, 시니어인 만큼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이해해야 해."


그것이 매니저가 내게 새 업무를 지시하면서 충고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충고를 받아들였고, 덕분에 몇 년 동안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던 낯선 시스템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시애틀이라는 곳은 여러가지 문제가 한 데 뒤섞여 공존하는 어떤 곳이다. 거기에는 나이든 개발자가 경력이 쌓일수록 늘어만 가는 책임과 의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문제가 있고, 이방인으로 시작한 삶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어떤 업무든 주어지면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고, 낯선 삶에 적응해야만 하는 가족의 가장으로서 겪게 되는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있다. 


매일 아침은 언제나 스탠드 업 미팅으로 시작된다. 아침 여덟시에 오피스에 도착하면, 언제나 그 날 할 일, 어제 했던 일을 정리해야 스탠드 업 미팅에서 입이라도 한 번 시원하게 뗄 수가 있다. 무슨 프리젠테이션도 아닌데, 나는 그 날 아침에 몇 분 남짓 중얼거릴 말들을 준비하느라 한 시간 남짓을 쓴다. 그리고 그 미팅이 끝나면, 나는 무너지듯 자리에 앉아 내가 했던 선택들과, 그 선택들이 이끈 결과들을 바라본다. 


나이를 먹어 좋은 것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난감한 상황들에 비교적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나의 동료들이 너무나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동료들 덕에, 나는 낙관적인 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이 큰 회사의 한 동양인일 뿐이다. 내가 하지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한다. 내가 느리면, 다른 누군가가 빨라진다. 욕은 좀 먹겠지만, 내가 느리다고 회사 전체가 느려지진 않는다. 


시애틀은 그야말로, 훌륭한 프로그래머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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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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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15.10.27 03:31

시애틀에 도착한지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그간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자면..


  • 업무 적응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영어. 안들린다. 한 달이 지나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잘 안들린다. 몇 달 간은 쭈욱 안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
  • 같이 온 사람들이 없었으면 무엇이든 처리하기 막막했을 것이다. 혼자 다 알아서 하는 성격이긴 한데,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만 있어도 안도감이 밀려온다. 
  • 가장 처리하기 어려웠던 것은 SSN 발급. 발급 시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신청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 번호만 받고 아직 카드를 못 받았다. 이 문제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기로 악명높은 오피스에 벌써 세 번이나 갔다왔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번호 말고 실물 카드가 없으면 은행에서 Auto Loan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차량 구입을 하기가 어렵다.
  • 시애틀 아마존 오피스에 가까운 XXX 혼다 매장에 좋은 딜러 분이 계신다. 한국에서 온 아마존 신규 입사자 분들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차량 계약을 도와준다고 약조하셨으니, 아마존에 조인한 한국 분은 아마 방문해 보면 좋을 것이다. (Ruby 건물에서 저에게 명함을 받아간 후, 매장에서 이 분을 찾아서 누구누구 소개로 왔다고 하면 됨. 아마 오디세이는 특별히 잘 해주실겁니다.) 
  • 영어만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그나마 '약소하다'. 세상 어디나 일하는 방식은 엇비슷하다. 
  • 시니어로 입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입사하고 나서 절절히 느끼고 있다. 나이를 헛 먹으면 곤란하다 (...) 

아마존 입사 과정에 대해서 묻는 분들이 많은데, 간단히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시험을 잘 보면 입사할 수 있다. (인사이트에서 출간한 '코딩 인터뷰 완전분석' 참고)
  • 경력이 꽤 되고 시험을 굉장히 잘 보면(응?) 시니어로 입사할 수 있다.
  • 시험을 잘 보는데는 알고리즘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 시험을 잘 보는데는 알고리즘 문제를 '신속히' 푸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 '신속한 해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 여기서 매력적인 해법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내놓는 brute-force 솔루션 보다 한 단계 나은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다.

입사하고 나면 이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어떤 일이 주어져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단기간에 체득할 수 있는 학습능력'과 '실제 문제를 협업을 통해 해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협업에는 영어가 굉장히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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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연히 이런저런 경로로 여기까지 와서 미국에 취업하신 글들을 봤네요.

    저도 개발자로써 정말 부럽습니다. ㅎㅎ

    앞으로도 종종 미국에서 사시는 이야기(?) 남겨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2015.10.27 11: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09.26 11:28

시애틀에 도착한지 사흘 째. 심한 목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 어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주 관련해서 이것 저것 처리할 것들이 많아 전혀 쉬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던 듯. (여기까지 적었더니 집 앞에 있는 Walgreen에서 약을 사다 먹으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기침을 참을 수 없을 때는 Cough Drops라는 사탕처럼 생긴 약을 물고 있으라고. 더 심해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면 NyQuil을 사다 먹고 뻗어버리라고. 다만 NyQuil은 다음날 오전까지 졸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둘째 날에는 애들 학교와 관련된 사항을 알아보고, 등록을 진행하기 위해 연락처를 받아왔다. 좋은 소식은 Temporary housing에서도 학교 등록은 가능하다는 것이고 (첨에는 집 계약서가 있어야만 아이들을 학교에 넣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잘못된 정보였다. 학교 등록 신청서를 보니, 임시 거처에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안좋은 소식은 방문 약속을 잡으러 학교에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_-; 월요일에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면 이제 직접 가서 약속을 잡던지 해야 할 듯.  


SSN (Social Security Number) 신청과 관련해서 아이들 양식까지 전부 준비를 해 뒀었는데, 와이프와 아이들의 SSN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그러니 내 것만 신청하면 될 것 같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기록이 넘어오는 시간이 있다고 해서 화요일에 가기로. 오피스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아침에 갈 생각이면 여덟시 반, 저녁에 갈 생각이면 오피스 문 닫기 직전에 가는게 좋다고들 한다. 


벨뷰 지역의 SSN 사무소는 636 120th Ave NE #100, Bellevue, WA 98005에 있는데, 구글 리뷰가 아주 끔찍하다 -_-; 가급적 모든 양식을 미리 채워서 가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인 듯.


* * * 


한가지 위안인 것은 이틀 째 되던 날, 옆집에 사는 한국인 부부의 도움으로 한인 마트를 찾아 냈다는 것 (H mart). 한인 마트에서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은 쌀과 쿠첸 압력 밥솥이었다 -_-; 


그런데 마트를 갈 때 마다 젓가락을 사 오는 것을 잊는다. 지금 묵고 있는 임시 거처에는 숟가락과 포크 뿐이라, 김에 밥을 싸 먹을때 애로사항이...


그러나 어른들이 이런 시시콜콜한 사항에 신경쓰건 말건 아이들은 Sports Authorities에서 구입한 공과 축구화로 운동장에서 두어시간동안 축구질에 여념이 없었으니... 대체 그런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싶다. 나는 일단 이놈의 감기에서 벗어나야 뭐든 할 수 있을텐데. 다행인 것은 이제 주말이라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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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나더

    블로그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조언 드리고 싶은데, 가족들도 SSN 신청해서 받을 여건이 되면 일찍 받아놓는게 좋습니다. 미국에서 SSN 없이 불편한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SSN 있다면 은행, 크레딧카드, 운전 면허, Utility 등의 일 처리하기가 훨씬 수월하죠.

    2015.10.05 04: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5.10.15 20:42 [ ADDR : EDIT/ DEL : REPLY ]
  3. SALLY

    우와- 저희남편도 이틀전부터 시애틀 아마존 본사에서 일해요.
    저희도 지금 임시숙소에서 먹고자고 하고 있어요.
    밥솥이랑 쌀 산것도 똑같네요.ㅋㅋㅋ 젓가락 안사온것도 같아요.ㅋㅋ
    김 싸먹는거 그냥 손으로 싸먹고 있어요.
    너무 반갑습니다! 저희남편보다 10살은 많으신데도 멋진 도전을 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아야겠어요. 글 잘 봤어요-

    2015.10.16 01: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그러시군요. ㅋㅋ 제가 며칠 좀 더 일찍 입사한 것 같으네요. 혹시 도움 필요하시면 제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byungjoon.lee@gmail.com 이구요. 여러가지 신경써야 할 것 들이 많을텐데,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드릴께요.

      2015.10.27 03:12 신고 [ ADDR : EDIT/ DEL ]
  4. 비밀댓글입니다

    2015.10.16 01:17 [ ADDR : EDIT/ DEL : REPLY ]
  5. 비밀댓글입니다

    2015.10.20 15:46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5.09.24 14:21

시애틀에 무사히 도착했다.


대략 30회에 육박하는 미국 출장 경험으로 단련되어 뭐 설마 입국 쯤이야... 하는 흐리멍텅한 정신상태로 입국에 임했으나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다 잘 넘어갔다. H-1B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출입국 도장에 유효 기간이 좀 길게 찍혔다는 것 말고는, 평소 출장 다닐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입국이었다.


그러나 미국 땅에 도착하면서 깨달았다. 예전에 출장을 올 때는, 무슨 일이건 생기면 도와줄 동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렌트카를 찾고 짐을 풀고 장을 보고 네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찾고 운전을 하고 표지판을 보는 모든 것들을 혼자 해야만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그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것 말고는, 한국에서의 생활과 큰 차이가 없음을. 못 알아들어 버벅거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일 준비만 되면, 다 괜찮다는 것을. (으...으응?)





오히려 가족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번에 옮긴 짐 중에 이 녀석들이 가장 크고 옮기기 까다로운 짐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먼산)


* * *


캘리포니아와 비교하면, 시애틀에서는 시골 동네 냄새가 난다. 굴곡 많은 지형도 그렇고,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거주지 생김도 그렇다. 캘리포니아 땅값이 비싼 이유를 알겠다 (...) 그나마 이런 동네에서 사는 한 가지 장점은, 걸어갈만한 데에 뭔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집 앞에 마트가 있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옆에는 스타벅스가...) 게다가 옹기종기 모여 살아서 그런지 다들 굉장히 친절하다 ㅎㅎㅎㅎ


그건 그렇고 내일부터는 한달 뒤에 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계약까지 성사시켜야 할 판인데 영어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뭔가 formal한 분야는 내가 잘 알아듣고 좀 덜 formal한 부분에서는 와이프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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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