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1.03.10 14:24
스티븐 시걸은 1951년생입니다.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배우죠. 환갑의 나이를 감안하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액션스타로 환갑의 나이에 왕성한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최근에는 로드리게즈 감독의 Machete (마세티?) 에도 출연했더군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한 정력을 보여주고 있는 실베스터 스탤론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이런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이 액션 배우를 처음 본 건 아마 "형사 니코" 에서였을 겁니다. 차고 때리는 액션이 아니라 꺾고 분지르는 액션을 보여준 이 배우 덕에, 처음으로 장만한 비디오 플레이어가 쉴 새가 없었죠. 아마 람보식으로 총질하고 터뜨리는 액션에 신물이 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뒤이어 이소룡 영화들에 열광하기 시작한 걸 보면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어제 문득 잠들기 전에 티브이를 틀어보니, 이 배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더군요. 요즘 SCREEN이라는 유선 채널을 보면 이 배우의 영화가 유독 자주 상영되는데요. 싼 값에 상영권을 전부 사들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노장의 액션을 보다 보니 서글퍼지기도 하고 해서, 대체 내가 얼마나 많은 스티븐 시걸 무비를 본걸까 싶어 한번 찾아봤습니다.

  1. Hard to kill (형사니코)
  2. Marked for Death (죽음의표적)
  3. Out for justice (복수무정)
  4. Under Siege (언더시즈)
  5. Under Siege 2 (언더시즈 2)
  6. Executive Decision (화이널 디시전)
  7. The Glimmer Man (글리머맨)
  8. Fire Down Below (화이어다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적더군요. 형사 니코가 1988년작, 언더시즈가 1992년작, 언더시즈 2가 1995년작, 글리머맨이 1996년 작이니, 따져보면 이 배우의 전성기는 채 십년을 못 채우고 끝나버린 셈입니다. 저도 그 뒤로는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볼 생각을 안했으니까요. 


사실 언더시즈 2까지는 그도 제법 샤프한 액션 스타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글리머맨에 이르니 갑자기 체중이 불어난 아저씨로 돌변해버리더니, 그 뒤로는 턱 두개를 주체 못하더군요. 티벳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동양적으로 치장한 의상도 거슬렸구요. 아마 그래서 더 이상 스티븐 시걸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를 배우로 쓰겠다는 제작사도 줄어들었을 테고요. 이미 세상에는 젊고 탱탱한 남자 배우들이 많은데다, 사실 이제 '몸으로 때우는 액션'은 주류가 아니니까요. (주류였던 적도 없죠.)

그런 사실을 그도 알텐데, 왜 요즘도 이 배우는 이렇게 열심히 영화를 찍고 있는 걸까요? 예전에 들었던 소문인데, 이 배우, 재정적 문제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찍은 영화들을 보면 자기가 각본쓰고 제작한 영화들이 꽤나 많습니다. 제가 어제 보았다는 Kill Switch (킬 스위치)도 그랬구요. 2008년도 영화입니다. 잘은 몰라도, 열심히 영화 찍어서 빚도 갚고 애또... 뭐 암튼 그러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시걸의 영화들을 보면, 줄거리는 뭐 어떨런지 잘 모르겠지만 편집은 정말 눈에 띄게 화려해졌더군요. 사실 그의 전매특허인 꺾고 분지르는 액션에는 그런 화려한 편집이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에요. 그런 스타일의 액션은 그냥 카메라를 갖다대고 조용히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최선이죠. 정 뭔가 해야 한다면 카메라를 좀 흔들어 주는 정도의 꼼수만 쓰면 충분할테구요.

그런데 알보고니, 그런 화려한 편집에는 이유가 있더군요.

두 개로 불어난 턱을 한쪽 팔로 가리고 있는
스티븐 시걸

킬 스위치의 액션 장면을 자세히 보면, 액션을 하는 것은 그가 아닙니다. 카메라는 거의 항상 그의 등을 비추고, 그의 얼굴은 액션 사이 사이 짜집기 된 쇼트 커트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액션 장면에서 실제 스티븐 시걸이 한 역할은, 상황에 맞게 인상을 써 주고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기 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덩치가 비슷한 대역을 쓴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가 쓴 가발도 표가 심하게 났구요. 아무튼, 얼굴을 중간 중간에 짜집기 해 넣으려다 보니 커트수가 늘어나게 되고, 일관성을 맞추기 위해 좀 더 많은 커트, 좀 더 화려한 편집을 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액션 배우를 고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빈약한 연기력, 더 이상 꺾고 분지르는 액션을 하기에는 너무나 둔해져버린 몸, 그럼에도 새로운 액션 영화를 쓰고 찍을 수 밖에 없는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착잡하더군요. 그의 둔한 몸에서, 어쩌면 저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읽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환갑이 되면 저도 그렇게 되겠죠? 프로그래밍을 고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빈약한 지식, 그렇다고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기에는 너무나 둔해진 손가락. 그럼에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하는 고단한 경제력. 희망사항이지만, 시걸에게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이 저에게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시걸이 이런 저런 쓰레기 영화들을 끊임없이 찍고 있는 건, 그저 정말로 심심해서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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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스티븐시걸

    쓰레기지만 정말 좋아하는 쓰레기랍니다 ^^ 그의 영화를 다 보았을 정도로요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2013.09.26 01: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