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7.12.31 11:21

앞선 글에서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쉬우면 스트레스가 아니다. 정말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이것 저것 따져봐야 할 것이 많다.


스트레스의 한 가지 요인으로 '욕심'과 '자존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거의 모든 문제가 이 두 단어에 연결되어 있지만, 스트레스가 드러나는 표면적인 양상만 두고보면 그 두 가지로 쉽게 치환하기 어려운 문제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일하기 위해서 간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정작 일로 받는 스트레스보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 같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저, 이 일을 작년에 진행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브리핑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바빠요. 담주 까지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그 일은 담 주 까지는 진행하기 어렵다. 좀 친절하게 이야기했으면 모르겠는데, 말투까지 으시딱딱하면 절로 열까지 받는다. 내가 저런 인간하고 같이 일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나 싶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이 번은 여사원의 경우다. 열심히 일하려고 입사했는데, 내가 비서인줄 아는지 커피를 타오라지 않나, 회식자리에서 술만 거나하게 취하면 정신머리를 안드로메다 너머에 널어놓고 왔는지 평소에는 꿈도 못꾸던 스킨십을 해 대는 동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회식 다음날만 되면 정말 다들 꼴보기 싫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이런 것도 당연히 인간관계 스트레스다.


이 쯤 되면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인간관계를 하려면 내가 SNS를 하지 회사에 입사했겠냐?"


앞 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인간은 자기가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러분이 인간관계에서 굉장히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가운데 상당수가 커뮤니케이션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회사가 코드 공장이 아닌 만큼, 회의 없이 또는 어떠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없이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코드만 생산하는 식으로 꿈같이 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회사 생활을 지배할 정도로 커졌다면 문제다.


그럼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아쉽게도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부 해결하려면 도인이 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가능하긴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그런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한 번 짚어보고 넘어가자.


그런 도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핵심적 역량은 다음과 같다.


  • 자기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으로만 여길 것

  • 일에 지나치게 많은 개인적 가치를 부여하지 말 것

  • 나는 남보다 못하다는 마음 가짐을 '진심으로' 가질 것

  • 자기 일을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길 것

  • 기술적인 말만 할 것

  • 아무런 생각 없이 즉시 신고할 것


그 각각의 의미는 사실 이 글을 읽는 각자 조금만 고민해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필자만큼 게으르다는 가정 하에 한 번 하나씩 짚어보고 넘어가보자.

첫 번째. 자기 자신을 회사의 부속으로만 여기는 마음가짐은, 자기 자신을 뭔가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마음가짐을 거세함으로써, 자존심이 상처받을 가능성을 최대한 낮춰준다. 진심으로 겸손하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보통 스트레스는 자존심이 조각날 때 찾아온다.

두 번째. 일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일이 지체되었을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일은 일일 뿐이다. 그 일은 지구를 구하는 문제와는 대체로 아무 관련이 없으며, 데드라인이 오기 전까지 잘 마무리되기만 하면 여러분의 승진이나 성장에도 대체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아마 이런 글 따위를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겸손한 자만이 밤에 쉽게 잠들 수 있다. 겸손하라. 숙면은 스트레스에도 그만이다.

네 번째. 두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몫의 일을 제 때 정확히 올바르게 끝내는 데만 집중하라. 그러면 '저 새끼 때문에 일이 지연되고 있어!' 라거나,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는지! 왜 저 인간과 한 팀인거야!' 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께서는 아마 관리자가 아니며, 그저 개발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팀 내의 특정 직원 때문에 생기는 프로젝트의 지연은 관리자가 해결할 몫이지 여러분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그가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 여러분 일도 아닌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 피곤해진다. 관리자가 해야 할 일까지 가로채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관리자도 월급을 받는데.... 물론 관리자가 여러분에게 그런 일을 떠 넘겼을 때는 다른 문제다.

다섯 번째. 말했듯이, 사람은 가장 많이 시간을 쓰는 일에서 가장 많은 실수를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만일 다변가라면, 그 만큼 여러분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니가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 회식 자리가 아니라면 기술적인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 여러분이 쓸데 없이 내뱉은 말이 비수가 (스트레스가) 되어 여러분 가슴에 되돌아와 꽂히는 일이 없도록 하자. 

여섯 번째.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고민하지 말고 신고하거나 매니저에게 알리자.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터넷 덕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한 번 믿어보도록 하자. 

(다음에 계속)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좋은 말이네요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 ㅎㅎ

    2018.01.16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주니어 개발자입니다. 좋은 글에 치유받고 갑니다!
    종종 들려서 치유하고 가겠습니다. 선배님.

    2018.01.18 01: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oughts2017.12.28 06:26

공기업 생활을 십삼년간 하고 팔자에도 없는 사기업 생활에 도전한지도 어언 삼년이 훌쩍 넘었다. 새해를 맞아 그 삼년 간 깨달은 것을 몇 번에 걸쳐 적어 보려고 한다. 오직, 그저, 까먹기 전에. 


아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교훈들이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는 모름지기 '인생은 케바케'라는 대전제에 입각하여,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 말씀도 드리고 싶다. 세상에는 이 글보다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차고 넘친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교훈들이 여러분의 성에 차지 않는다면, back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오는지 부터 깨달아야 한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는 보통 여러분이 잘 하는 것에서부터 온다. 잘 못하는 것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여러분이 수영 초보자라고 하자. 수영 초보자가 수영을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매일 같이 물을 먹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좀처럼 없다. 물을 먹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수영 초보자가 수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대체로 언제부터 시작되느냐면, '시간을 많이 투자한 것 같은데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다른 초보자가 보기에는 꽤 잘 하는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이 슬슬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생긴다. 


달리 말해, 스트레스의 근원 중 상당수는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다. 잘 하지만 더 잘 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자기 기대에 못 미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여러분 중 상당수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개발자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개발에 남들 보다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개발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개발이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개발에 뛰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직장을 잡고 일을 하는 순간 부터 개발이라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힘들다. 왜인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동기에게 치이고 상사에게 지적받고 매니저에게 혼난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능력에 회의가 생긴다. 이러니 스트레스를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다. 힘들고 불행하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이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당장의 자기 감정만 살피는 근시간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다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 실패야 말로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 깨지면서 배운 것들이 가장 오래 간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뒤집어 말하면 케케묵은 공자님 말씀이란 소리다. 다시 말하면 하나 마나 한 소리이며 피부에 잘 와닫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런 '하나 마나' 한 소리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 공통의 교훈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필자는 공기업 생활을 13년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개발자로서 개인적 실패 경험이 0에 가까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자존감(또는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으며, 아마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오만 방자한 인간 같으니'하면서 수근 댔을 것이나 듣지 못했다. 개발자로서 실패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스트레스 또한 0에 가까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13년간은 개발자로서 나에게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 오만 방자했던 시간 덕에 사기업 이직의 꿈을 꾸었고 지금은 아마존 미국 본사에까지 와 있으니 딱히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긴 하지만, 사기업으로 이직한 뒤에 내가 겪었던 오만가지 수모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꽤 정확한 수사다. 왜? 내가 시니어 엔지니어로서 주니어들에게 보여줄만한 경험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 때 가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발자로서 실패하고 깨지는 경험을 좀 더 일찍 했으면, 40대 중반에 개발자로 살면서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직장에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그것이 여러분이 매일 같이 겪는 실패의 경험 탓이라고 하자. 최소한 그것은 몇 가지 긍정적인 사실을 드러내 준다. 첫 번째는 여러분이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 경험들이 여러분을 진정한 개발자로 단련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 오히려 더욱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렇다면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뒤 이은 글에서는 그 '다른 이유들'에 대해서 짚어보도록 하겠다.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