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ly Agile/General2008.12.07 11:03
옷을 사러 나갈 시간이 통 없어서 가끔 인터넷에서 쇼핑을 합니다. 인터넷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반품을 하거나 교환을 해야 할 경우 좀 난감해서 가급적 물건을 살때 조심을 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열번에 한번 정도는 교환을 할 일이 생깁니다.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스웨터 하나를 샀는데, 올이 튿어진 부분이 있더군요. 그래서 반품신청을 하려고 택배회사 웹사이트를 찾았습니다.

저는 택배회사의 서비스에 큰 반감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여태껏 택배회사로부터 물을 먹은 적도 한번도 없었고, 기한이 촉박한 물건은 인터넷으로 주문하지 않는 편이라서 택배회사의 배송 지연때문에 피해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하루나 이틀 정도만 기다리면 아주 '건강한' 상태의 물건을 받을 수 있었죠. 로젠 택배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여태껏 로젠 택배를 통해 물건을 받으면서 단 한번도 물건이 파손되거나, 배송이 지연되거나, 배송기사님이 불친절 하다거나 하는 경우를 겪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젠 택배회사의 웹 사이트에는, "어라?" 싶은 구석이 있더군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로젠택배 웹사이트를 통해 배송신청을 하려면, 우선 회원가입을 해야 합니다. (회원가입하지 않아도 배송신청을 할 수 있는 웹 사이트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회원가입' 덕에 혜택을 누리게 되는 일도 있으므로 이정도는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회원가입을 하고 나면, 이제 교환/반품 배송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로젠택배 웹사이트를 통해 교환/반품 배송신청을 하려면, 우선 원래 배송된 물품의 운송장 번호를 적어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뭔가를 주문해보신 분이라면, 이 운송장 번호라는 것이 포장지를 뜯는 과정에서 파손되기 쉽다는 사실을 아마 아실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굳이' 대비하려면, 포장지를 뜯기 전에 운송장 번호를 미리 적어둬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그렇게들 하시나요? (안하신다는 쪽에 오백원 걸겠습니다 ㅋㅋ) 그러니, 운송장 번호를 적도록 하는 대신, 반품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나 주소지로 원 배송 내역을 조회할 수 있도록 했으면 아마 더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운송장 번호를 제대로 입력하고 완료 버튼을 누르면 다음 화면이 뜨는데, 이 화면이 진짜 난감합니다. 이전 화면에서 운송장 번호를 입력할 때, 저는 '물품을 받을 사람' 부분에 받는 사람 주소지가 자동으로 완성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원래 운송장 정보에 기록된 발신인 주소가 수신인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군요. 결국, 수신자 주소를 수동으로 입력해야 했습니다. 귀찮았지만, 어쨌든 열심히 입력하고 완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배송비 계산 버튼을 눌러 수신자 주소를 확인하시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웬 도깨비같은... 어쨌든 누르라고 했으니 누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웹 사용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아도 이제 별로 당황하지 않습니다.) 누르니까 다음과 같은 오류 메시지가 뜹니다.

'입력하신 주소와 원 운송장의 보낸 사람 주소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받을 사람 주소지가 자동으로 완성되도록 사이트를 설계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오류인데, 사용자보고 입력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잘못 입력했으니 다시 입력하랍니다. 허허...

한 열번 정도 시도해 보다가, 결국 다음날 로젠택배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객샌터 상담원은 굉장히 친절합니다. '어제 내가 왜 열을 받았었지?' 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전날 웹 사이트에서 열받은건 완전히 까먹고는 순순히 교환/반품 배송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원 운송장 번호를 묻더군요. 묻는대로 대답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받으실 분 주소를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원래 물건을 보낸 사람 주소로 보내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 정보는 운송장 번호를 보면 알수 있을텐데요."

그랬더니, 보낸 주소와 받는 주소가 달라질수도 있어서 묻는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정말 그것이 정책이라면, '입력하신 주소와 원 운송장의 보낸 사람 주소가 일치하지 않습니다.'같은 오류는 로젠택배 웹 사이트에서는 발생하면 안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친절하신 상담원 덕에, 저는 무사히 배송 신청을 마쳤습니다.

* * *

보통 웹 사이트는 '고객의 만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만듭니다. 당연히 그 UI도 그런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죠. 그런데 위의 로젠택배 사이트처럼, 간혹 그와 정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웹 사이트도 만나게 됩니다.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는 커녕 고객의 만족도를 감소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웹 사이트 말이죠. (오해를 살까 싶어 말해두는 건데, 저는 로젠택배의 '일반적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무 반감이 없습니다. 다만 그 '웹사이트'가 하는 일이 영 맘에 들지 않아 투덜대는 것일 뿐이죠.)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인사이트의 번역서,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 거야"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만, 고객의 적극적인 투덜거림이 없으면 개선되기 힘듭니다. 이 책에서도 UPS라는 웹 사이트의 경우를 예로 들어 '고객의 만족과 반대로 작용하는 사용성'을 설명하고 있는데요. 유독 택배회사의 웹 사이트들에서 이런 anti-usability 패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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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Thoughts2008.04.07 11:03
인사이트의 신간,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거야"는 부제가 보여주는 대로, "사용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유쾌한 통찰"에 관한 책입니다.

예전에, (그게 대학시절이니 십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프레스에서 출간된, 윈도우 프로그램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느냐는 문제에 관한 책이었죠. 안타까운 것은, 그 책에서 프로그램의 사용성에 대한 쓸만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일반적인 프로그래머들은 알지 못하는" 사용성에 대한 문제들이 풍부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식견도 풍부히 접할 수 있지요. 어조가 좀 냉소적이긴 합니다만, 그게 큰 흠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시중에는 "개떡같은" 인터페이스를 가지고도 장사를 하는 "개떡같은" 프로그램들이 꽤 많거든요.


이 책의 백미는 "사용자는 웹 사이트를 사용하기 위해 로그인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스토리를 웹 사이트들이 어떻게 구현하고 있고, 그 결과물들이 보여주는 문제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로그인하는 것은 꽤나 간단한 절차인 것 같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사용성에 관한 문제들, 보안성에 관한 문제들, 정치적/경제적 문제들까지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이 숨어 있습니다. 최선은 모든 사람들이 비밀번호를 웹 사이트별로 달리 관리하는 것이 되겠습니다만, 사람은 그렇게 많은 패스워드를 어떤 패턴 없이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 패스워드"같은 솔루션이 등장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실패했습니다. 이 기술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기술이 될 뻔 했습니다만,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공룡이 개인 정보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셔야겠습니다만, 저자는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법은 "고객의 관점"에서 나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고객은 소비자인데, 지금껏 소비자들은 거지같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만큼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왔습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흔한 모토가 소프트웨어에서 만큼은 그다지 먹히지 못한 것이죠.

물론, 거지같은 소프트웨어를 내놓는 회사는 망합니다. 망하지 않더라도, 손해를 보긴 합니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기업의 운영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는데, 거지같은 소프트웨어는 그런 점에서 전혀 도움이 안되거든요. 그렇게 보면 "왜 우리가 굳이 소프트웨어의 사용성에 대해 불평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나올수 있겠습니다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용성 면에서 거지같은 일군의 소프트웨어들 가운데 "그나마 나은" 하나를 골라 써야만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어떤 한 회사가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거지같은 인터페이스를 울며 겨자 먹기로 써야만 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라는 거대기업을 빈번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마 그래서 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소프트웨어의 사용성을 개선한다는 행위는 고객과 생산자간의 단순한 피드백 고리를 넘어서는 모종의 경제적/정치적 투쟁으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해석에 넋놓고 있어서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겠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계몽입니다. 개발자를 계몽시켜야 하고, 사용자를 무시하는 기업을 계몽시켜야 하죠.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냉소적이지만, 먹힐 것 같지 않습니까?

[전략] ... 따라서 다음번에 개떡같이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면 잠시 멈추고 살펴보십시오. 잠시 가지고 놀면서 프로그램이 왜 마음에 안들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특정 부분을 콕 찍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위해 있는 '부끄러움의 전당(Hall of shame)' 웹 사이트에 개떡같은 설계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겁니다. 이 책의 웹 사이트인 www.whysoftwaresucks.com 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에 메일을 보내 당신의 평가를 볼 수 있게 알려줍니다. 더 바보 같은 것을 찾아낼 수록, 그게 공개되는 것에 더 크게 당황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용자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번역서입니다만, 이 책의 번역은 IT 서적 답지 않게 유쾌합니다. 요령부득인 문장도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듭니다. 사용성에 대한 통찰을 가벼운 마음으로 얻고자 하는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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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8.04.10 23: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