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2.09.10 08:45

요즘 “다섯 손가락”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대체로 흥미롭습니다만,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하교수입니다.

전국환이라는 유명 배우가 연기하는 하윤모 교수라는 이 캐릭터의 특징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음악계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을 권위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사건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도 내리기 힘든 결정들을 서슴없이 내리고는, 나중에 후회하며 철회하는 일을 반복하죠.

이러한 증상의 원인은, ‘자기애’를 만족시킬 방법이 ‘권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권위가 도전받으면 발작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을 보통 ‘꼰대’라고 합니다.)

물론 다섯 손가락에서 이런 증상이 가장 심각한 사람은 지창욱이 연기하는 ‘유인하’이긴 합니다. 의붓 형제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아무 죄책감 없이 내뱉는 문제적인 캐릭터죠. 유인하는 의붓 형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물론 그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전화 버튼 소리로 전화 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라, 그의 그런 노력은 수시로 좌절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으니, 치유의 기회가 하교수보다는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하교수가 대체 젊은 날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할 밖에요.

각설하고,

요즘 묻지마 범죄가 극성입니다. 백주 대낮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칼부림을 한다거나, 극장 관객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하여 분풀이를 한다거나, 죄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성욕을 풀려고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범죄들 말입니다. 이런 범죄들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며, 저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일컫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쉽게 보람을 느끼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스로의 인생을 가치없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은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키워드는 박탈감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애정을 빼앗겼다는 박탈감,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박탈감,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박탈감 등등, 자존감의 결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심리적 현상들은 많습니다. 이러한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떤 다른 행위를 통해서 보상적인 승리감을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 가운데에, 범죄가 있습니다.

자존감은 보통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통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존중받으며,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은, 자존감이라는 강력한 방어기재를 가지게 됩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극복과 성취,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실패라는 키워드들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좌절과 체념, 결과로서의 실패라는 키워드들에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낮은 자존감을 만회하고자 다른 형태의 성취에 집착하게 될 때 범죄가 잉태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다섯 손가락’에서 채시라가 연기하는 채영랑이라는 캐릭터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존감이나 어머니로서의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대신, 자식을 통해 결여된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하죠. 그 덕에, 하지 않아도 되었을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어기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 주로 습득하게 된다는 사실은,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은 지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공교육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주입할 방법도 인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지식 주입’의 사명은 사교육으로 넘겨지고, 사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들의 시간은 희생됩니다.

‘지식 습득’을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아이들의 박탈감은 고스란히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교육은, 마땅히 치유해야 할 그런 박탈감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주장하는 덕목들을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자존감이 문제’라는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예수님이 너를 구원하셨으니 너는 의인’이라는 결론을 통해 신도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영혼을 치유하려 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기 간파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을 스스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좀 더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 후보의 구호를 좋아하죠. 아, 저는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삶이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조금 더 치유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뿐이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밥상머리 대화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지고 사랑스러워진다면, 그리고 질책보다 격려와 칭찬으로 가득해진다면,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빚어지는 많은 문제를 우리는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결론이 '저녁'이라는 시간의 시스템적인 속성을 도외시한 낙관적 결론에 다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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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