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12.24 17:40

변호인은 잘 알려진 한 남자의 일생 가운데 'AWAKENING'에 해당하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의 인생은 그 사건을 전후로 극명하게 달라진다. (스포일러에 해당하므로 그 '사건'이 무엇인지는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사실 특정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내러티브에는 전혀 신기한 구석이 없다. 음모가 있고, 그 음모에 구속당한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 말종'으로 살던 한 사내가 몸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개과천선하고, 전혀 다른 남자가 된다. 그야말로 '정의의 수호신'이 된다. 어떤가.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변주되어 온 탓에, 관객들은 이런 류의 스토리에 익숙하다. 익숙한 스토리는 따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변호인'은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무엇때문일까. 결론은 하나다. 바로 이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다. '변호인'의 스토리는 이미 따분할 정도로 자주 변주된 정형적 내러티브의 동어반복이라고. 이런 반복이 계속될 수록, 관객들은 믿지 않는다.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이 현실에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극장에 가거나, TV를 켜고 드라마를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은 영화를 보거나, 소설책을 보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타협하고, 협상하고, 원칙을 희생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들 중 상당수는 그런 인물이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을 애써 부정해 왔다.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은, 국밥집 아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해? 데모 몇번 한다고 세상이 바뀌어?' 이 말은 사실 '혼자서 깨끗한 척 하지 말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혼자서 깨끗한 척 하지 말라'는 말은, 사실 '너희같은 놈들이 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너무 불편하다. 그러니 제발 존재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좀 점잖게 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좋건 싫건 간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그 국가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적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 던졌던 사람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말이다. 이 영화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 디디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는 바로 그 사람들이 쌓아올린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정말 소름끼치도록 직선적인 방식으로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새삼 감동적인 것은, 사실 굉장히 참담한 현실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지도자가 없는 대한민국, 그런 사람들이 애써 쌓아올린 가치들이 너무나 손쉽게 훼손되는 대한민국, 그리고 그런 가치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이런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리는 대체로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살아간다. 그러니 송강호의 신들린듯한 연기에 취한 우리 가슴이 이토록 격렬하게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과연 안녕하신가, 하고. 이 물음에 가슴이 쉬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면, 그다지 안녕한 것 같지 않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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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Thoughts2009.05.25 12:28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세상을 등졌습니다. 이 소식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진 이후로 정치에는 관심을 끊고 살던 저희 부부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와이프는 저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눈물을 보였고, 저도 감정을 추스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는 도덕성과 출세 사이에 큰 상관 관계가 없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젊은 날을 보내셨던 시대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독재로 군림하던 제왕적 통치자가 총탄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았고, 이런 저런 대통령들이 투옥되고 사형 선거를 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도덕적인 청결함은 돈이 있으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가치는 아닙니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성장한 30대에게, 노무현은 새로운 가치의 한 표상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부패는 여기서 끝이다. 부패하면 패가 망신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승리한다. 예전에는 구호에 그쳤던 그런 말들이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정말 실제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직에서 내려와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대변했던 가치에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노무현도 별 수 없네...'라는 말이 지지자의 입에서도 서슴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노무현을 의심했던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노무현은 그가 대변하던 가치 그 자체였습니다. 그 가치가 훼손되자 스스로 '여러분은 나를 버려달라'고 말했고, 그 끝으로 그는 자신마저 버렸습니다. 신념이 떠난 자리에 남은 인간 노무현은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몸으로 웅변한 것입니다.

덕분에 이제 우리나라에는 선이 하나 생겼습니다. 노무현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구분짓는, 선 하나가 생긴 것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그어놓은 그 선을 넘었느냐 넘지 않았느냐에 따라 평가될 것입니다. 어떤 흠결도, 그 잣대를 결코 피해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죽음으로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이 땅에 되살려 놓았습니다만, 남아있는 우리는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가 대변했던 신념을 온전히 지켜나갈 또 다른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혼탁한 정치판을 보아서는 도무지 짐작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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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TAG 노무현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명복을 빕니다..

    2009.05.26 22: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