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4.07.28 09:16



박근혜 정부는 대체 왜 SW 교육을 입시에 연계시키려고 하는가?


일단 대통령의 발언부터 짚어보자.


"입시에 연계시키지 않으면 잘 하려고 들지 않아서..."


당연하다. 입시 준비 말고 다른 데 쏟을 시간이 없잖은가. 


각설하고. 


SW 교육을 입시에 연계시키려고 하는 것은 유행병이다. 일단 미국을 비롯한 SW 강국들이 요즘 SW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거기 편승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으니 하는 것이다. 그런데 편승하려면 애들이 SW 교육을 받으려고 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책 읽을 시간도 없는 아이들이 입시랑 연계하지 않으면 SW 교육 받으려고 할까? 그러니 "입시에 연계하자"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미국을 비롯한 SW 강국들의 SW 교육은 사실 입시와는 아무 상관없는 나노학위(nano-degree) 시대로 가고 있다. Coursera 같은 웹 사이트에 들어가면 품질 좋은 8주~12주 짜리 교육 과정이 널렸다. 대학의 한 학기 개론 수업 이상의 품질을 보증하는 강의들이 차고 넘친다는 소리다. 이런 나노학위들은 기존의 IT 교육 시장을 재편할 뿐 아니라, IT 아닌 다른 부문의 고급 교육 시장, 그러니까 대학 졸업 이상의 학위를 겨냥하는 교육 시장을 완전히 재편하고 있다. 


SW 강국들이 어렸을 때 부터 SW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SW 부문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점유하는 것이 장차 국부에 지대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창출하는 글로벌 시장의 규모를 보라. Coursera 등이 만들어 내는 글로벌 나노학위 시장의 규모도 국내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그들의 "SW 교육"은 시장의 아래로부터 발원한 이런 움직임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미 있는 토대를 더 강화해 보자는 것이다. 더 많은 고급 인력들을 빨아들일 수요와 돈이 충분한 만큼,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국내의 IT  교육은 그동안 국부 창출에 기여하기는 커녕 국내 IT 인력들의 단가를 낮추고 고급 인력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데만 기여해 왔다. 그러니 국내에서 IT 일자리는 그다지 매력적인 일자리가 아니다. 우리가 SW 인력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IT 직종이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충분히 젊음을 투자할 만한 밥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IT에는, 석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젊음을 손해봐야 할 만한 매력이 없다. 그렇게까지 공부해서, 또는 치열하게 노력해서 올라서야할 만한 무엇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SW 교육이 입시와 연계되면 이런 상황이 역전될 수 있을까? 


매력적인 밥그릇이 시장에 있으면 굳이 고딩, 중딩 때 SW 교육 안 받아도 상황은 달라진다. 좋은 IT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에 매달릴 것이다. (로스쿨이나 의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정부는 IT 기업과 관련 산업에 대해서만큼은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게임 산업을 생각해보라. 이제 중소규모 국내 게임 업체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그 기업에 묻어가기 위해 안간힘이다. 그들이 언제 그렇게 컸나? 우리 나라에 와서 뭘 좀 가르쳐달라고 무릎꿇고 사정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그놈의 규제 혁파는 건설기업들에만 하지 말고 IT 기업들에도 좀 하는 게 어떨지. 


작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공대생' 박근혜 정부는 잘 기획된 음모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공대 출신이니 내가 알아서 잘 하겠다. 그러니 '가만히 있으라'. 어쩌면 정부는 Coursera 같은 사이트를 정부 주도 형태로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마치 샵메일처럼..


아니면 IT 유권자의 관심을 세월호에서 떼어놓으려고 하거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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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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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12.09.10 08:45

요즘 “다섯 손가락”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대체로 흥미롭습니다만,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인물은 하교수입니다.

전국환이라는 유명 배우가 연기하는 하윤모 교수라는 이 캐릭터의 특징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음악계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을 권위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거의 모든 사건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도 내리기 힘든 결정들을 서슴없이 내리고는, 나중에 후회하며 철회하는 일을 반복하죠.

이러한 증상의 원인은, ‘자기애’를 만족시킬 방법이 ‘권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권위가 도전받으면 발작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을 보통 ‘꼰대’라고 합니다.)

물론 다섯 손가락에서 이런 증상이 가장 심각한 사람은 지창욱이 연기하는 ‘유인하’이긴 합니다. 의붓 형제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아무 죄책감 없이 내뱉는 문제적인 캐릭터죠. 유인하는 의붓 형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물론 그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전화 버튼 소리로 전화 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라, 그의 그런 노력은 수시로 좌절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으니, 치유의 기회가 하교수보다는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하교수가 대체 젊은 날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할 밖에요.

각설하고,

요즘 묻지마 범죄가 극성입니다. 백주 대낮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칼부림을 한다거나, 극장 관객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하여 분풀이를 한다거나, 죄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성욕을 풀려고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범죄들 말입니다. 이런 범죄들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며, 저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일컫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쉽게 보람을 느끼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스스로의 인생을 가치없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특징은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키워드는 박탈감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하는 애정을 빼앗겼다는 박탈감,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박탈감,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박탈감 등등, 자존감의 결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심리적 현상들은 많습니다. 이러한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떤 다른 행위를 통해서 보상적인 승리감을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들 가운데에, 범죄가 있습니다.

자존감은 보통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통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존중받으며,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은, 자존감이라는 강력한 방어기재를 가지게 됩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극복과 성취,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실패라는 키워드들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좌절과 체념, 결과로서의 실패라는 키워드들에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낮은 자존감을 만회하고자 다른 형태의 성취에 집착하게 될 때 범죄가 잉태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다섯 손가락’에서 채시라가 연기하는 채영랑이라는 캐릭터에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존감이나 어머니로서의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대신, 자식을 통해 결여된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하죠. 그 덕에, 하지 않아도 되었을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어기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 주로 습득하게 된다는 사실은,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 보다 더 많은 지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공교육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주입할 방법도 인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지식 주입’의 사명은 사교육으로 넘겨지고, 사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들의 시간은 희생됩니다.

‘지식 습득’을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아이들의 박탈감은 고스란히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공교육은, 마땅히 치유해야 할 그런 박탈감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주장하는 덕목들을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자존감이 문제’라는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는, ‘예수님이 너를 구원하셨으니 너는 의인’이라는 결론을 통해 신도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영혼을 치유하려 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기 간파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을 스스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좀 더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 후보의 구호를 좋아하죠. 아, 저는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삶이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조금 더 치유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뿐이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밥상머리 대화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풍부해지고 사랑스러워진다면, 그리고 질책보다 격려와 칭찬으로 가득해진다면,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빚어지는 많은 문제를 우리는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결론이 '저녁'이라는 시간의 시스템적인 속성을 도외시한 낙관적 결론에 다름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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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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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07.12.28 10:56

저는 90년도에 첫 대학 입학 시험을 치렀고, 92년도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원하던 학과가 아니라 원하던 대학이라는 점에 주목합시다 ㅋㅋ) 잘 하면 91학번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해에 수학 시험이 정말 기록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92학번이 되고 말았죠. 저는 수학에는 별 소질이 없거든요.

90년도 겨울에 입학 시험 응시 원서를 내러 학교로 갔는데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나더군요. 저는 지금도 '입학 시험'을 생각하면 91년도 겨울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 90년도 12월의 그 최루탄 냄새가 생각납니다.

* * *

흔히 현행 입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학생들을 3중고로 내모는', 수능/논술/내신의 3중 평가 체제를 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능도 준비해야 하고, 논술도 준비해야 하고, 내신도 준비해야 하는 것이죠. 저는 학력고사 세대이니 논술이나 내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1등급/2등급 등의 학생부 구별은 존재했습니다만, 형식적이었죠.) 하지만 수능/논술/내신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면 좀 피곤할거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수능'이나 다름 없는 '학력고사'만 치면 됐던 91년도의 시험 제도가 편하긴 편했습니다. 한가지만 준비하면 됐으니까요. (아. 체력장을 빼먹을 뻔 했군요.)

그런데 '학생 입장에서 편한'게 '대학 입장에서도 편한'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변별력이 없지 않느냐'고 아우성 치는 분들이 었었고, 그 덕분에 '변별력'을 높이는 동시에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하고 '평소 학교 생활 태도'까지 가늠할 수 있는 논술과 내신이 도입되었으니 말이죠. 도입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새로운' 시험 제도를 도입하자고 아우성친 것은 정작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아니었습니다. 대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돈줄을 쥔 사람들이게 마련이니까요.

92년도에 제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저는 정말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많은 분들이 국내 일류 대학이라고 인정해 주는 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교과서에만 충실'하고 '학교 수업과 예습 복습만 철저히 한' 저 같은 학생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죠. 실제로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방에 있었고, 크게 유명한 고등학교는 아니었습니다만, 매년 서울대에 20명씩의 학생들은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서울에 진학한 학생들 중 대부분은, 저처럼 과외 한번 받아본 적 없이, 가끔 단과학원이나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하곤 했었죠.

물론, 서울에 진학한 다음에 소위 교육에 있어서의 '경제적 불평등'을 몸소 느낄수는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저도 과외 시장에 뛰어 들어야 했거든요. 별로 능력이 없어서 가르쳤던 학생들의 성적을 많이 올리지는 못했습니다만, 주변의 예를 살펴보면 '좋은 과외 선생을 만난' 학생들의 점수가 많이 오르긴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과외 시간에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결국 좋은 대학에 갔죠.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성실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것이었죠.  (그것도 학력고사 준비라는 특정 분야 한 군데에만 말이죠.) 물론 대단한 천재들은 별 문제 없이 좋은 대학에 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95% 정도의 학생들을 나누는 기준은 '성실성'하나 뿐이었습니다. 머리가 좋아도, 특출한 재능이 있어도, 학력고사 준비에 성실하지 못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못갔습니다. 물론 극도로 머리가 좋으면 문제는 다릅니다만, 어중간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결과로 파생된 문제점도 딱 한가지였습니다. 기준이 '성실성'한가지 밖에 없으니,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성실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실성에 따라 점수를 받았죠. 문제는, 학생이 자신의 '성실성'을 쑤셔박을 곳이 학력고사 한가지 밖에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받은 점수(딱 한번 평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에 따라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된다는 점이었죠.

여기에 문제를 느낀 나머지, 2번 시험을 보아 그 중 좋은 점수를 고를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고, 그 때 부터 이런 저런 교육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졌습니다만, 어쨌던 '점수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되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현행 교육제도들의 모든 폐해는 전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입력이 아무리 다양화되어도, 그 결과로 나오는 아웃풋은 전부 하나라는 것이죠. 서울대부터 시작해서 1, 2, 3, .... 의 순서가 매겨져 있는, 그 순번 말입니다.

* * *

자. 위의 이야기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뭔가요? 92년도의 구닥다리 교육체계 아래에서도, 가난한 학생'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을 정하는 함수 f의 입력이 되는 인자가 '학력고사 점수' 한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그게 좀 쉬웠습니다.

f(학력고사점수 grade)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f(학력고사점수 grade1, 논술점수 grade2, 내신점수 grade3)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이 함수의 실행 결과로 나오는 값이 딱 하나(갈 수 있는 대학)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 팜플렛(hwp 파일입니다)을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가난이 교육으로 대물림되는 악순환

위에서 본 함수 f의 값이 무엇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냐, 아니면 이제 그만 가난해도 되느냐가 결정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분들도, 그런 악순환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함수 f의 기능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닌데, f의 인자 가짓수만 늘어난 현재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뭘까요? 네. 맞습니다. '앞으로 가난해지고 싶지 않으면 논술과 내신도 다 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려면 자식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논술과 내신에 쏟아 부어야 할 사교육비가 덤으로 생긴겁니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아, 불쌍한 이 땅의 중산층이여.. ㅎㅎ)

원래 떼부자인 사람들에게는 사실 교육 제도가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에요. 수틀리면 유학을 갔다 와도 되니까,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죠. 하지만 중산층(이라고 정말로 불릴 만한 재력이 있거나, 자신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식이 계속 교육을 잘 받아야 '그나마 먹고 살만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가 있거든요.

예전에 "하버드 대의 공부벌레들"이라는 TV드라마를 공중파에서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넘은 일입니다.) 그 때 그 드라마의 모 교수가(킹스필드였나?) 그런 소리를 했더랬죠. "하버드 대 졸업장은 곧 권력이다." 비슷하지는 않습니다만, 서울대학교 졸업장 있으면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교육에 목을 매지 않을 수가 없죠.

그럼 진짜 문제는 뭐란 이야기죠? 시험 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대학에 따라 인생이 서열화 되는 것으로 느끼는' 세간의 인식 구조가 진정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 * *

쪽팔리는 고백입니다만, 저는 직장을 잡고도 먹고 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초중학생들에게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학원에서 한달에 오십만원을 받고 그 짓을 했었죠.) 눈알이 똘망똘망한 어린 아이들이 제 앞에 모여앉아, 저도 대학생일 때 이해하기 참 힘들었던 알고리즘을 배워 Visual C++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실 속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먹고 살겠다고 이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해도 되나... 결국 그만뒀습니다. 아직도 가끔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악몽을 꿀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했던 짓 가운데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입니다.

그 아이들을 컴퓨터 앞으로 내 몬 것은, '각종 경시대회 수상 기록을 가져오면 대학교 입시 때 가산점을 주도록 한' 입시 제도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제도가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함수 f의 출력은 전혀 바꾸지 않은체 이런 식으로 '의도는 좋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대학교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학생들이 컴퓨터 앞으로 내몰리고, 뜻도 모르는 알고리즘을 기계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 '가산점'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백만달러짜리 점수'가 될 수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대학에 가고 안가고를 결정하는 일을, '백만달러짜리 결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것에 따라 평생 얻게 되는 수입이 백만달러가량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물론 교육이 주는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빈곤층에서는, 대부분 그 '백만달러'를 포기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을 좀 유심히 봤습니다.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과거에도 사교육을 잡겠다고 고교평준화제도(‘73년), 대학 입시자율 박탈(’80년), 대입 3불정책(‘98년) 등 계속 입시제도를 바꾸어 왔지만,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고교 평준화제도나 대학입시자율박탈, 대입 3불정책 폐지 등이 아닙니다. (위에서는 마치 그런 것처럼 언급하고는 있습니다만.) 문제는 f값의 출력을 다변화 할 복안도 없으면서 계속 새로운 시험제도를 도입해(입력만 다변화) 학생들만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 물론 사교육비도 증가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고교 평준화제도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평준화 제도를 씹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 예를 많이 듭니다만, 미국에서도 좋은 고등학교를 가면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아지긴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려진 사립 고등학교에 비싼 돈을 내고 학생들을 보내기도 하죠. 하지만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럭저럭 괜찮은 것은, 미국에는 특성화된 다양한 대학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공돌이까지 꼭 하버드를 목표로 해야 하는건 아니라는 소리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저같은 공돌에게도 '니가 공부를 잘한다면 서울대에 가야지!'라고 하더군요. 물론 요즘은 선택권이 좀 다양화되긴 했습니다만.) 한편, 우리나라는 대학 서열에 대한 세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고교 평준화를 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요? 평준화를 안하면 '좋은 고등학교'='좋은 대학교'='좋은 인생'의 공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고등학교'를 없애야 합니다. '좋은 고등학교'가 생기는 순간, '좋은 인생'을 위해 아이들을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입시 학원으로 떠밀게 됩니다. (좋은 대학교라는 기준이 전공별로 다양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같이 가난하고 빽없고 세상 물정에 그다지 밝지 못한 부모님을 둔 사람은 좋은 대학에 가기가 좀 심각하게 힘들어지죠.

마찬가지 논리로, 대학교 입시 자율도 '이런 세상 아래'에서는 없는 게 낫습니다. 서울대가 입시자율을 하고, '자기 기준'대로 학생들을 뽑는다고 선포했다고 해 봅시다. 그 순간, 학원에는 '서울대학교 입시 준비반'이 따로 생길겁니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입시 제도가 학교마다 다 다르니까요. -_-;) 그 결과로 '무슨 무슨 학원의 서울대학교 진학반이 좋다더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제 그 학원의 서울대학교 반을 보내기 위한 '무슨 무슨 학원 입시 준비 특별반'이 만들어지게 될 지도 모르죠. (일본은 그랬었습니다. 동경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ㅎㅎ)

자. 그러면 이명박 당선자는 '사교육이 철저히 시스템화될 수 밖에 없는'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사교육비를 어떻게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는 걸까요?

'누구든 적성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고교를 300개 만들겠다'
'누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이 찾아가 뽑도록 하겠다'
'학교가 기초학력과 바른 인성만큼은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도록 하겠다'
'온 동네, 온 나라가 함께 나서서 좋은 학교를 만들도록 하겠다'

고교 300개를 만들겠다는 것 안에는, '교육 때문에 낙후된 지역에 우선적으로' 150개의 기숙형 공립고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뒤가 거꾸로 된 감이 있습니다만, 좋은 공약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자율형 사립고교'에 이르면, 좀 이상합니다. 대체 '무슨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은데, 학생을 뽑는 것도 '그냥 자율에 맡기겠다'고 합니다. 예로 '종교를 건학 이념으로 삼는 학교'같은걸 들긴 합니다. (모 토론 프로에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께서 나오셔서, '기도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ㅎㅎㅎㅎ 적어도 '정책'임을 홍보하려면, 이것보다는 더 잘 알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현행 자립형 사립고'도 '자율형 사립고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군요. 재정규제도 낮춘다고 합니다. (뭐,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는 뜻이겠죠. 최고 상한은 규제하겠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등록금을 더 받을 수 있으니, 정부에서 가져가는 보조금의 액수를 낮춰도 되고, 결과적으로 정부 재정 부담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절감된 재정을 다른 소외 학생 지원에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율형 사립고'를 운영하면, 그 결과가 사뭇 뻔하지 않나요?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기도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로 학생을 넣을 정신나간 학부모는 드물 것 같고, 주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일만한 학교'나, '잘 가르치는 선생들이 있는 학교'로 학생들을 들이밀려고 하겠죠. 결국 그걸 빌미로 학교는 돈을 벌 테고, 돈이 좀 있는 분들이 그런 학교로 자제 분들을 보낼 테니, 결국 그런 학교에는 있는 분들의 학생들만 넘쳐나겠죠. (이런걸 '양극화'라고 하나보더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반론을 제기하실 분들도 있는데, 소위 '향학열'이 높은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 가서 주변 민심 한번 살펴보세요. 주변에 임대 아파트가 있으면 집값 떨어져서 그 주변에는 이사 안한다는 사람은 차라리 양반입니다. '어떤 아파트 아이들은 공부를 영 안해'라는 소문이 돌면, '저 아파트에 사는 애들하고는 놀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쓰레기같은 애엄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서는, 주변에 '좋은 학원이 있는 지역의 아파트'만 집값이 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죠.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공약 가운데에는 좋은 내용도 많습니다만, (영어에 대한 공교육 기회 확대 같은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저같은 사람 등골 휘게 하는 영어 사교육비는 좀 줄지도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공약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만 정리해 보죠.

  • 자율형 사립고
  • 교육국제화 특구
  • 대학 입시 제도 자율화
  • 교육격차 현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사업의 결과를 국민과 주민에게 보고(점검까지는 좋은데, 대체 왜 보고한다는 것인지 알수가 -_-;)
  • 학교별 학력자료 공개 (대체 학교들을 서열화 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이런 자료 공개되면 '꼴통 학교에는 내자식을 보낼 수 없다'는 엄마들 나오죠)
  • 기초학력진단평가를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그래도 저는 국민학교 다닐때에는 입시 걱정없이 맘편하게 놀았습니다. 이런거 시험 보면 그때부터 엄마들이 애들을 닥달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국민학교때부터 공부에 마음을 잃어... 아흑 ㅜㅜ)
* * *

이런 글을 써 놓으면 이런 말을 할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왜 이명박 당선자의 좋은 공약은 이야기 안하느냐?" 좋은 공약은 좋으니까 이야기 안하는 겁니다. 그냥 마음먹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공약입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긴 뭐하니까 좋다고 생각되는 공약들도 예를 들죠.

  • 영어 잘하는 대학생 활용
  • 교사 국제 교류
  • 원어민 보조교사 확보
  • 영어 공교육 완성 (그런데 왜 하필 영어?)

저는 이명박 당선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대선 후보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교육 제도는 반대입니다.

저는 있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인생이 핀다'는 현재의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와이프가 '우리 애도 이런 저런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면 호통부터 쳤겠지만,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결혼 직후에는 '우리 자식은 맘껏 놀게 하자'고 했었는데, 지금은 감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제 주머니 사정과 아이의 능력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자기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교육제도입니다. 대학간 상하 구별을 없애는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낫죠.

그런 면에서 보면 92년 그시절이 좋았습니다. 너무 순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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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왕의난자

    너무 좋은글이네요...저도 92학번인데...ㅋㅋ 동감이 갑니다.

    2007.12.28 14: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 잘쓰시네요ㅎ 부러워요~
    제 글이 너무 부끄럽네요;;
    교육정책이 정말 있는 사람에게로만 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2007.12.28 18:4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트랙백이 걸려져서 와봤습니다. 닉네임부터 호감이 가는데요? -_-;;ㅎ
    92학번이라;;; 저는 02학번입니다. 요번 겨울이면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네요..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긴 하지만 경제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교육에도 고스란히 전달되는게 너무 슬퍼요. 우웅~_~

    2007.12.29 22: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조건 보다도 좋은 학벌을 우대하는 사회 전체의 풍토가 고쳐지지 않으면,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결과는 똑 같을 것 같습니다.

    2008.01.03 00: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NC_Fly님 블로그에서 트랙백보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글 읽게되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사회풍토가 바뀌어야하는 모양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1.09 20: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