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8.12.24 01:17
신문을 매일 볼 시간이 없어서 며칠 치를 몰아서 보는 편인데, 보다 보니 공교육에 새로운 위기가 도래한 것 같더군요. 생각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솔직히 이렇게 빨리 찾아올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찾아온 것도, 이와 양상이 비슷했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올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죠.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이 들리기 시작할 때 재수없게도 미국발 악재들이 연이어 터졌고, 정부는 환율+물가 삽질을 해댔습니다. 결국 지난 일년은 여당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잃어버린 십년'보다도 고통스러운 1년이 되고 말았구요. 대다수 서민층들은 아마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당이 추대한 대통령을 뽑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예상과 달랐거든요.)



예전 공교육의 문제점은 보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1. 경쟁력이 없다
2. 경쟁력이 없다
3. 경쟁력이 없다

이 문제점은 대부분 (1) 평가제도상의 문제 (2) 교육이 부를 재생산한다는 뿌리깊은 믿음의 문제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2)가 해결되기 전에는 (1)을 아무리 뜯어고친다고 해 봐야 좋은 결과가 나올리가 없는데, (1)을 손대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학생들만 죽어나는 평가제도가 만들어졌고, 거기서 살아남으려다보니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교육을 안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는' 사교육 시장의 경쟁력이 공교육보다 좋아지게 된 것이죠.

교육을 교와 육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문제로 나누어 볼 때,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교, 그러니까 '가르친다'는 영역에 있어서는 분명 사교육에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을 '학교 성적'의 문제로 국한시키면 분명히 그렇죠.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그래도 사교육에 밀리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한가지는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성적'을 제외한 부분에 대한 가르침이고, 두 번째는 학생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부분, 그러니까 '육'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죠. 이 두 가지를 합해 흔히 '전인교육'이라고 합니다.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더 나을 수 있는 부분은 이 부분밖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제고사 파동을 계기로, 공교육은 '전인교육'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상실합니다. 왜 그렇냐고요? 위에 걸어둔 만화가 그 이유를 아주 잘 요약해 보여줍니다. 이제 학교는 더 이상 '선과 악의 구분'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이라는 것의 정의가 아주 모호하며, 악과 구별하기도 애매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죠.

이러한 상태에서 공교육의 경쟁력을 재고하는 방법은 공교육 현장에도 사교육과 똑같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뿐입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별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죠. 자사고나 특목고 뭐 이런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목표로 해서 나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대체 전인교육은 어디서 하나요? -_-; 그나마 전인 교육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은 대안학교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도한 결과건 아니었건 간에, 앞으로 공교육은 더욱 더 피폐해질 겁니다. 자사고든 특목고든 대안학교든 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만 남아서 굉장히 획일적이고 경직된 교육을 받게될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그 결과로 사교육시장은 (공교육의 일부까지 흡수해가면서) 더욱 비대해질겁니다. 사교육 업계는 돈으로 먹고 사는 곳이고 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문제나 자질 시비와는 한 걸음 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성추행 교사 대신 양심 교사가 해임되는 '곳'에서 아이를 가르치시겠어요 아니면 그런 잡음 없이 좋은 대학을 목표로 자녀를 공부시킬 수 있는 '곳'에 의지하시겠어요?

저는 이런 일이 생길거라 예측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빨리 올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마 이것도 그 '속도전' 탓이라면 탓이겠죠. '속도'가 중요한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다른 곳을 돌아보면 안됩니다. 톨레랑스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그렇게 속도를 내어 달려가는 바로 '그 곳'이, 정말로 속도를 내어 달려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위의 만화가 그리는 세상이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끔찍하군요.
신고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그저 싫네요. 보는 것 자체가 기분이 더러운 현실입니다. 고등교육의 압박때문에 정신병 걸렸던 전적이 있는 1人이...

    2008.12.31 01: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