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2017.10.29 16:36

DCC-130은 의료용으로 생산된 인간형 로봇 가운데 가장 성공한 모델이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의 사용은 의료 용도로만 허가되어 있으므로 '성공'을 따지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은 것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의료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 덕에 그 효과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노령화는 이제 거의 확실한 범 지구적 현상이었다. 로봇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고 있었고, 시장은 점진적이지만 뚜렷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DCC-130이 다른 로봇에 비해 그토록 빠른 속도로 보급된 데에는 노령화 이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에 대한 인류의 지독한 반감을 완화하고도 남음이 있을 법한, 독특한 사용자 경험이었다. 


DCC-130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철저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은 있을 수 없다'는 철학을 따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작인 DCC-110과는 달랐다. DCC-130은 필요한 순간에만 말했고, 시키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사람과 유사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인간과 비슷해 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따위는 불러일으킬 수는 없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DCC-130은 환자의 필요를 만족시켜야 하는 경우에만 우아하게 (그러니까 거의 인간이나 다름 없이) 움직였고, 그 이외의 순간에는 1990년대의 영화를 장식했던 대다수의 로봇들처럼 뻣뻣했고 멍청했다. 환자의 신체를 편안하게 받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 때문에 무려 일곱개의 관절로 구성된 손가락을 갖고 있었지만, 사람의 지시 없이는 볼펜 한 자루도 자기 마음대로 집으려 하지 않았다. 


그 덕에, DCC-130은 DCC-110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다. DCC-110은 의료용으로 출시되었으나 주로 로봇 화형식의 제물로나 쓰인 반면, DCC-130은 환자들과 함께 도심을 거닐 수 있었고, 필요한 증빙 서류만 갖추면 아마존을 통해 살 수 있는 '아주 조금 특별한' 일반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존에게 이 일반 상품은 '아주 조금만 특별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시가 이것만 주문해 놓고 집을 나가버렸다는 거야?"


휑하니 비어버린 집에 남은 가구라고는 소파와 커피 테이블, 그리고 침대가 고작이었다. 존이 고관절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동안, 제시는 나머지 가구 전부를 들고 집을 떠나버렸다. 그 빈 자리 한 가운데 시트릭서스 사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찍힌, 거의 냉장고 크기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쪽지가 상자에 붙어 있었습니다."


존은 노란색 메모지를 마이크에게 건넸다. 마이크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메모지를 살폈다. 오랜 기자 생활로 남의 글을 읽는데는 이골이 나 있었으나, 이별 통지서를 읽는 것은 그로서도 처음이었다. 제시의 필체는 정갈하고 분명했다. 꼼꼼하고 단호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필체였다. 그리고 그 필체만큼이나, 내용도 단호했다. 


힘든 수술을 받는 당신 곁을 지킬 수 없어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로서도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대신, 이 로봇을 보내요. 회복기간 동안, 당신 곁을 잘 지켜 주리라 믿어요. 


마이크는 쪽지를 반으로 다시 접어 존에게 돌려주었다. 이별 이외의 다른 여지는 전혀 없는 쪽지였다. 그는 생각했다. 과연 이유가 뭘까. 그가 보기에 지난 몇 년간 존과 제시는 그저 유쾌하고 평범한 커플이었다. 회사 일로 지독스럽게 바쁜 존 때문에 제시가 조금 외로워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살면서 그 정도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부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타인의 가정사는, 기자로서도 쉽게 파고들기 어려운 주제였다. 해 줄 말이 없었다. 질문도 던질 수 없었다. 소파에 창백히 몸을 파묻은 존의 표정은, 질문을 견뎌낼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용히 몇 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마이크는 일어나 부엌을 뒤지더니 가위를 찾아 들고는 상자 앞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으로서는 다른 옵션이 없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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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