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2017.10.28 17:08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긴 어렵겠지요. 내 얕은 지식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으니까요. 


벌써 육개월이 지났습니다. 어제 일도 제대로 떠올리기 어려워질 정도로 약해져버린 내 기억력으로는, 육개월 전부터 벌어진 그 일의 선후 관계를 온전히 복원해내기도 힘겨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그 덕에,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벽은 수많은 메모지들로 어지럽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당신이 떠난 뒤 거의 완벽하게 공허해져버린 집으로 돌아왔던 첫 날을 떠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을 회상하고, 그 날 있었던 일을 메모지에 옮기고, 그 기억을 벽으로 옮겨 맨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내 자신을 추스리는 데 거의 한 달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 날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손잡이는, 마치 십 수년간 아무도 손을 댄 사람이 없었던 것 마냥,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당신과 십여 년을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집의 현관문 손잡이는, 마치 집을 지은 이래 아무도 찾았던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차갑게, 아주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물론 과장일 겁니다. 당신이 집을 떠나며 남긴 음성 메모는 불과 내가 돌아오기 하루 전에 남겨진 것이었으니까요. 기억이라는 것은 종종 자기 연민의 결과로 윤색되거나, 과장되곤 합니다. 그 날을 아무런 자기 연민 없이 돌이키기란 불가능했으니, 어쩌면 내 첫 메모가 그처럼 유치한 수사들로 채워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과 미스테리들이 으레 그렇듯, 첫 실마리를 찾는 고통이 끝나자 나머지 부분은 제법 순조로왔습니다. 문제는 어떤 순서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그 얼개를 따질 수 있게 되는데 까지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아마 당신으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렇더라도, 차분하게 들어주기 바랍니다. 이 일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공유해온 세상이 진화해온 방식을 조용히 바꿔놓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신은 그런 일이 벌어졌건 말건 상관없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것을 앞으로도 큰 차이 없이 즐기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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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