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7.10.08 02:07
평판이란 무엇일까요? 평판이란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이미지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지요. 좋은 이미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래머라는 부류의 사람들을 세상은 굉장히 단순하게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길고 흰 손가락을 가진 마르고 성마른 외모를 가진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남성으로, 안경을 착용하였으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사람과 소통하는 것 보다는 국방성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하는 데 더 재미를 느낀다.' 뭐 이정도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프로그래머', 엄밀하게는 IT 업계 종사자의 이미지죠.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아마 헐리우드가 단단히 한 몫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보다는 '관련 업게 종사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를 더 중시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어차피 모든 프로그래머를 다 똑같이 취급하므로 (그런 점에 있어서는 군대 계신 분들과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ㅋㅋ)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에게나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여러가지로 이롭다는 것이죠.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라구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 * *

그렇다면 프로그래머는 '다른 프로그래머들' 혹은 '같은 직장에 있는 다른 근무자들'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보다 개선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가장 간단한 방법 하나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각주: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책꽃이에 책을 꽂아 놓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들에게 있어서 책은 참고서로서의 활용도가 더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책을 꽂아놓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자주 보는 책들을 책상위에 꺼내 놓고, 위의 그림처럼 쌓아놓도록 합시다. (제목이 잘 보이도록 쌓아놓으면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프로그래머임에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책을 쌓아놓으면 책상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무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사가 파티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상사는 당신의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을 보고 당신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책상 위에 부여된 무질서는 당신의 이미지를 보다 신비롭게 바꿔줄 것입니다.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 너무 깔끔한 책상은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도록 하려면, 책상 위에 쌓아둔 책들을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으로 셔플(shuffle)하는 것이 좋습니다[각주:2]. 그래야 당신이 그 책들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책의 목록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급적 뭔가 '있어보이는' 책을 골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만일 C++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프로그래머라면, Template Metaprogramming에 관한 책을 구매해서 쌓아두면 좋을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또한 '쉽게 읽히지 않는' 어려운 책일 수록 효과가 높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Donald Knuth 교수의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 시리즈가 이미지 관리용으로는 최고의 도서라고 할 만 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쌓아둔 책에 대해 누가 질문을 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그럴때는 최근 널리 알려지게 된 사자성어대로, '소이부답'하면 됩니다. 씩 웃어주시고, '직접 읽어보세요'라고 해주세요. 대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중간에 버버거리게 되면 당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게 됩니다. '보시면 알게 됩니다'가 보다 Guru 적인 대답입니다. 그렇게 해도 상대방이 계속 미심쩍어한다거나, 질문을 해 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럴때는 '글쎄 저도 공부중이라서요'라고 해 주는게 가장 낫습니다. 말을 많이 하려고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되니까 가급적 이런 저런 변명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간혹 진짜 고수가 당신의 도서 목록을 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거나,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을 여는 순간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토해내기 때문에, 대화를 하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가급적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두세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들어두고 외워두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질문을 할 때 대답으로 써먹을 수도 있어 좋습니다.



  1. 물론 농담입니다. [본문으로]
  2. Life is Shuffle.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완벽하군요. 이런 비법을 알고 계셨다니.

    2007.10.09 20: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ssoon

    정말로 완벽합니다.

    2007.10.16 09: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저는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수정해봤습니다. ^^ 글이 참 재미나내요.
    잘 들어두세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있으면 겸손하고 유연한 개발자라는 이미지를 보다 공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9.04.14 18: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낭만고양이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9.04.28 23:3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