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12.19 14:02

어느날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들 덕분에 예전보다 더 컴퓨터에 친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개발'의 많은 부분은, 아이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말이야..."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는 프로토콜 스택(protocol stack)을 개발하는 개발자다. 그런데 아이에게 '프로토콜 스택'이 정확하게 어떤 소프트웨어인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두 대의 컴퓨터가 서로 통신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아빠가 하는 일'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아빠는 핸드폰 앱 같은건 안 만든다는 거지?"


아들은 실망한 눈치였다. 아빠가 핸드폰 앱을 만드는 개발자였더라면, 아마 친구들에게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그런 건 만들지 않는다. 


"아빠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그런 앱들도 동작을 못하지."


그 말에, 아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번졌다. 아마도, 친구 중 하나가 물었으리라. '아버지 뭐하시노?' 그리고 핸드폰을 보여주며 물었으리라. '니 아부지는 이런거 안만드시나?'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란, 앱이다. 그게 다다. 그것 이외의 어떤 것이 있으리라는 것을 아이들은 모른다. 아들은 아빠가 개발자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빠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어떤 것인지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궁금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속도 상했을 지 모른다. '왜 나는 아빠가 개발한 걸 만져보지 못하지? 핸드폰에 깔 수 있으면 써 볼 수 있었을텐데.' 


옆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들 옆에서, 나는 그날 책 대신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컴퓨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컴퓨터들이 서로 협력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인터넷은 무엇이고, 웹 서버란 무엇인지, 라우터란 어떤 장비들인지. 그리고 아빠가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그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잠이 솔솔 올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듣다 잠든 아들은 다음날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더니, 청천벽력같은 선언을 하고야 만다. 


"아빠, 나 컴퓨터 배울래!"


"이미 세상이 다 컴퓨터로 도배되었는데 뭘 또 배워?"


그렇지 않은가. 이미 세상 모든 사람이 손에 컴퓨터 하나씩은 들고 다니고 있는데, 굳이 뭘 또 배운단 말인가. 내 말에 아들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도 아빠처럼 컴퓨터로 뭐 만들어 볼래!"


난리났다. 아,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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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

  1. 어릴때 저도 프로그래머가 장래희망이었는데 현실은 정말 쉽지 않겠죠

    2013.12.19 14: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선님

    지금부터준비해서 10년후면 괜찮지 않을까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제대로 대우받는 때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안철수 대통되면 말이죠. 그렇다고 안철수 미는건아니구요
    담은 반기문땜에 틀린것 같고 9년후에요

    2013.12.19 18: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김은미

    하하하 웃겨요를 누릅니다

    2013.12.19 18: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rainyway

    컴퓨터전공 학생입니다 ^^
    이번 졸업후엔 전공관련으로 바로 취직하지 않지만
    과거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꿈을 키우던 터라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아이 건강하게 키우시길 바래요 :)

    2013.12.23 21:2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장래희망을 아빠가 하는 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행복할것 같습니다.
    저도 미래에 아들이 '아빠가 하는거 재밌을것 같아' 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ㅎ

    2014.04.04 10: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